[아주: 인터뷰] 정경호, 롤러코스터로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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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1-0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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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궁진웅 기자]

아주경제 홍종선 기자 = 영화 <롤러코스터>가 기대 이하의 성적 속에 퇴장을 앞두고 있다. 개봉 후 3주여 동안 30만명이 채 못 되는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

누구의 책임일까. 영화가 그토록 재미없고, 배우들의 연기가 엉망이고, 영화의 매무새가 엉성했나. 부서 직원들끼리 회식을 대신해 단체관람을 하려 했지만 저녁시간 대에는 상영 스케줄이 없었다는 직장인의 일화, 주말을 맞아 자녀와 함께 보려 했으나 밤 11시45분 1회 상영을 확인해야 했다는 학부모의 불만은 책임 소재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른 멀티플렉스나 중소 영화관 사업자들에게 아쉬움을 토로하기 전에 배급을 맞은 CJ엔터테인먼트와 한 가족인 CGV에게 수익논리에 따른 상업적 배정을 넘어 무비꼴라주 제도를 통해 관객과 만날 기회를 연장․확대하라고 청하는 까닭은 다름 아니다. 30만명만 보고 스쳐 보내기엔 너무나 아까운, 감독 하정우가 선사하는 유쾌한 웃음 그리고 정경호를 축으로 3개월의 리허설을 통해 빚어낸 배우들의 찰떡호흡과 리듬감 넘치는 대사를 보다 많은 관객이 즐기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깊어가는 가을, 오랜만에 허리 꺾여 가며 크게 웃게 해 준 배우 정경호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얘기는 밖에서 안으로, 먼 과거에서 오늘로 휘감아들며 나눴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데뷔 10년, 서른…연기하기 좋을 나이

첫 질문부터 직구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의 최윤, 영화 <폭력 써클>(2006)의 이상호와 <허브>(2007)의 이종범, 드라마 ‘그대 웃어요’(2009)의 강현수와 ‘자명고’(2009)의 호동왕자를 비롯해 군대에 다녀와 2013년 선보인 드라마 ‘무정도시’(2013) 정시현과 영화 <롤러코스터> 마준규까지 맡은 배역마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게 보였고 열연이었다. 영화 <님은 먼 곳에>(2008) 용득이와 <거북이 달린다>(2009) 송기태 역시 정진영과 김윤석이라는 대선배 곁이었기에 최고의 존재감으로 평가 받지 못했지만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행한 호연이었다. 아니다 싶게 엉터리인 작품이 없고, 연기를 망친 적도 없는데 왜 스타배우로 성장하지 못했을까.

“저도 생각을 많이 했지요. 그것은 데뷔 10년을 맞은 저에게 있어서 해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였어요. 그래야 더할까, 한다면 어떻게 할까에 대한 길이 보이니까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은 보여 드릴 게 아직 남았다는 것입니다. 다 보여 주지 못해 아쉽기보다 보여 드릴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저는 무얼 하든 ‘정경호의 재발견’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전작의 존재감이 미미했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군대를 다녀오니 서른한 살, 배우로서 연기하기에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새롭게 또 다른 저를 꺼내 보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고, 그렇게 택한 게 무정도시와 롤러코스터입니다. 일부러 저라는 사람과는 많이 다른 인물을 택한 거지요.”


강혜정과 이민정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누구 못지않은 열정과 노력으로 임했던 작품들. 스스로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대표작으로 꼽고 있을까.

“대표작이라고 하면 부끄럽고요. 기억에 남는 작품들은 있어요. 영화 <허브>와 드라마 ‘그대 웃어요’예요.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틀에 박히지 않은 준비과정도 좋았고, 그보다 더 좋았던 건 제가 현장에서 ‘놀았던’ 거예요. 강혜정 씨나 이민정 씨, 배우 간 팀워크가 좋아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싶어요. 또 하나의 좋았던 기억은 <롤러코스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화라는 거죠.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촬영했고 부산(국제영화제) 가서도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다시 다음 작품을 할 에너지를 얻은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화. <롤러코스터>에는 감독 하정우를 비롯해 스포츠신문 삼국통일의 김현기 기자 역의 최규환, 바비항공사의 한기범 기장 한성천과 이동희 부기장 임현성, 넘버원 승무원 강신추 사무장 역의 강신철, 맏언니 승무원 김활란 역의 김재화, 수다 배틀을 벌이는 승무원 초롱이와 송자영 역의 김재영(본명 김준규. 주인공 이름 마준규의 모티브)과 나예랑, 마준규의 뺨을 갈기는 미모의 승무원 나혜진, 마준규와 스캔들이 나는 배우 메리로 소개되는 강한나, 단발머리를 휘날리는 엉뚱한 안과의사 이지훈, 근육단련에 몰두한 나머지 몸 좋고 마음 좁은 신혼남 이상원, 걸출한 욕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준규의 매니저 고규필까지 중앙대 연극영화과 선후배가 함께했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인기와 인지도의 다름에 상관없이 오랜 시간 우정과 의리를 나눠 온 사람들의 끈끈한 호흡을 확인할 수 있는 이유다.

잊히지 않는 캐릭터를 묻자 호동왕자(자명고)와 정시현(무정도시)을 꼽았다. “죽을 것 같은 지경, 더 이상 못 찍겠다 싶은 순간까지” 자신을 내몰며 만났던 캐릭터이기 때문이란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이준익, 김윤석, 하정우에게서 배운 것

연기에 대한 애정과 욕심을 감추지 못하는 정경호에게 함께 작업한 사람들 중에 뺏고 싶은 재능이나 매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 물었다. 세 사람을 꼽았다.

“이준익 감독님은 제게 많은 걸 가르쳐 주셨어요. 가장 큰 게 영화를 보는 눈을 주신 건데요. 신(scene)의 신 하나하나의 온도를 체크하면서 촬영하는 분이세요. 정말 영화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김윤석 선배님의 집중력이 정말 대단해 보였어요. 촬영 전에는 곧 연기할 배우가 아니라 동네아저씨 같이 편하게 계신단 말이죠, 그런데 슛이 들어가면 아우(감탄). <거북이 달린다>에서 함께 붙는 신에서 눈빛을 봤어요, 도주범 기태에게 얘기할 때의 눈빛. 많이 놀랐고 많이 배웠어요. 아, 배우는 계속 배우는 존재구나, 공부 많이 해야겠구나 하는 걸 김윤석 선배님을 보면서 생각했죠.”

“(하)정우 형을 대학 들어가자마자 봤을 때의 놀람,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김윤석 선배를 보며 다시금 했던 건데. 모르는 사람이 아닌 알던 사람에게서 다시 한 번 놀라기는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요즘 정우 형에게 다시 놀랐어요. 정말 연습을 어마어마하게 하더라고요. 그냥 대세 하정우가 된 게 아니에요. 남들이 연기 잘한다 하고, 인기도 많으면 사람이 조금 느슨해질 수도 있는데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대학 시절 그때처럼 그렇게 치밀하게 임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의 하정우가 계속되고 있다 싶어요.”


마준규의 선물

이제 <롤러코스터> 얘기를 해 볼까. 주인공은 <육두문자맨>이라는 영화에서 욕 잘하는 남자를 연기한 한류스타 배우 마준규. 공식적으로는 아직 가시지 않은 영화의 후유증, 실제로는 세상사람 발 아래로 보는 까칠한 성격에 소심한 결벽증이 겹쳐 입도 성격도 ‘더럽다’. 그런 마준규를 연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털고 자신감을 얻었단다.

“하지 말아야 할 것,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들 갖고 있지 않나요? 생활의 많은 부분을 카메라와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시키고 사는 배우인 저 역시 그런 스트레스를 갖고 있었나 봐요. 석 달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쌍욕을 해대는 마준규를 연기하며 스트레스가 풀렸어요, 가능한 더 욕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제 모습이 재미있었고요.”

역시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 얘기가 나오니 신이 오른다. “흔히 연예인병이라고 하죠. 그동안 주변에서 연예인이나 매니저들을 보면서 제가 생각을 해 왔던 생각들, ‘저런 태도는 안 되겠구나’ ‘저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했던 부분들이 이번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마준규에게는 고소공포증, 비행거부감, 결벽증이 있잖아요, 너무 재미있고 배우라면 한 번 세상에 내놓아 보고 싶은 입체적 캐릭터예요. 3개월 동안 하정우 감독님이랑 함께 출연한 선배 연기자 분들이랑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마준규에 대해 얘기했어요. 그렇게 마준규를 만들어 가는 동안 제 안에 자신감이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사진=남궁진웅 기자]

코미디영화 속 정극연기, 그것이 만들어 낸 명장면

<롤러코스터>는 코미디영화다. 그것도 우디 앨런식 코미디에 닿아 있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한 장의 시놉시스가 되고, 수개월의 연극 연습과도 같은 합 맞춤과 리허설에 의해 한 권의 시나리오는 점점 더 완성도를 높여 간다. 그리고 슛. 이미 쿵짝과 호흡을 맞춘 준비된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논다. 속도감 있는 대사와 타이밍 좋은 음악들이 귀를 즐겁게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노애락과 직업적 애환이 기울어짐 없이 풍자돼 유쾌한 웃음을 주는 영화로 우리 앞에 왔다.

역설적이지만 하정우식 상쾌 코미디영화 안에서 주연배우 정경호는 정극연기를 한다. 태풍의 눈처럼, 밖으로 휘몰아치는 한바탕 웃음에 에워싸인 중심에 서서 욕하고 불안해하고 울고불고 소리친다. 마준규의 절규는 다시 새로운 웃음의 시작 포인트가 되고, 그렇게 주변부의 코미디와 중심부의 정극연기가 순환하며 포복절도의 웃음을 빚어낸다.

“저는 정극연기를 했어요. 진심대로 연기한 거죠. 상황에 따라 리액션만 하면 됐던 거예요. 제일 만족스러운 장면이요? 두 장면이 있는데, 기도할 때랑 발악했던 장면이에요. 정우형도 저도 마준규도 크리스천이에요. 정우형이 기도문을 써 와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준규 입장에서 기도문을 적으면서 그 상황에 대해, 또 그 안에 들어간 마준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덕분에 편안히 연기할 수 있었죠. 소리 지르고 온갖 욕을 하며 발악하는 장면은 세 번을 했어요. 네 번을 하라면 못했을 거예요, 그럴 만큼 정말 마준규가 되어 울부짖은 것 같아요.”

배우가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경호는 묻는 것마다 자기를 열어 보였다. 인터뷰에 임하는 그의 모습에서 배우의 자리와 연기 현장에 선 그가 보였다. 이제 막 시작되는 30대 정경호의 새로운 배우 인생 10년, 어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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