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부원 기자= 연초부터 카드업계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고객정보 유출 사건이 벌어진데 이어 일부 은행들이 대출사기에 연루되는 등 금융권에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
금융사들의 신뢰는 겉잡을 수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더 이상 탈출구를 찾기 힘들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올 정도다. 올해 뿐만 아니라 지난해 박근혜정부 출범 후 금융권에 굵직한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리스크관리 체계를 전반적으로 뜯어 고치고, 그릇된 영업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계속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 새정부 출범 후 조용할 날 없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부터 고객정보 유출, 관치금융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금융사와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한화손해보험과 메리츠화재에서 각각 16만건에 달하는 고객정보가 유출됐다.
그리고 다음달인 6월 이장호 BS금융지주 회장이 금융당국의 압박을 받고 사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치금융 논란이 들끓었다.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여느 정권 때와 다를 바 없다는 국민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하반기 들어선 금융권이 더욱 휘청였다. 9월부터 동양그룹의 부실이 가시화되면서, 동양그룹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샀던 개인투자자들이 격분하기 시작했다. 하반기는 이른바 동양그룹 사태로 금융권의 신뢰가 무너졌다.
또 10월 이후로는 국민은행 도쿄 지점 직원들의 부당 불법 대출 사실이 드러났고, 12월에는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과 한국씨티은행에서 각각 10만건과 3만건의 고객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발각됐다.
◆ 새해들어 정보유출에 대출사기까지
2014년을 맞아 금융당국을 비롯해 전 금융권이 신뢰 회복을 경영목표 1순위로 꼽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역시 신년사를 통해 “신뢰 없이는 금융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기본이 바로 설 때에만 발전을 논할 수 있다”며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같은 다짐은 말 그대로 ‘작심삼일’로 끝났다. KB국민카드, 농협카드, 롯데카드 등 3개 카드사에서 무려 1억4000만건의 고객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지난해 연말 두 외국계은행에서 고객정보가 유출된 데 이어 연초부터 대규모 정보유출 사건이 터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부 은행에선 대출사기 사건까지 발생했다. KT 자회사인 KT ENS의 직원이 협력업체와 짜고 하나ㆍ농협ㆍ국민은행에서 2000억원, 10개 저축은행에서 800억원 등 총 2800억원을 불법으로 대출 받은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이번 대출사기는 분명 금융사가 피해자인 사건이지만, 금융권의 신뢰에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며 “다른 사건들이 조금씩 해결책을 찾아가고 잠잠해질 때 다른 사건들이 터져서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 리스크관리 강화하고 타성 벗어나야
그나마 금융감독원이 이번 대출사기 사건의 정확을 포착해 피해규모를 더 키우지 않았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금융감독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완전범죄가 될 뻔한 사건을 잡아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며 “금융사들도 거액을 대출할 때 얼마나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지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보유출 및 대출사기 사건으로 신용리스크 뿐 아니라 운영리스크의 중요성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됐을 것”이라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운영리스크를 강화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신뢰를 되찾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이번 대출사기는 은행들이 KT란 대기업의 이름을 지나치게 믿었기 때문인데 상대가 중소기업이나 개인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며 “매출채권을 충분히 부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회사 이름값만 믿고 모니터링을 소홀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권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마인드와 소비자마인드를 갖는 게 우선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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