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서울 소재 대학교를 졸업한 김 모 씨(25·여)는 삼성 입사를 위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삼성 사원증’이 왠지 모르게 성공한 이들의 상징 같아 보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복사와 팩스, 전화 응대처럼 아주 간단한 일이라도 ‘대기업’에서 하는 것과 ‘중소기업’에서 하는 것이 마치 수준이 다른 것인 양 여겨지는 게 현실 아니냐”며 되물었다.
단순히 삼성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내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그런 직장에 다니고 싶었고, 기왕이면 삼성이라는 지붕 아래에서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모든 인재가 모여있는 삼성에 입사한다면 성공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설명했다.
김 모 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이 삼성 입사의 꿈을 꾸고 있다. 삼성은 관심과 칭찬만큼이나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반기업 정서와 경제 민주화로 대표되는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싸늘한 시선의 중심에는 삼성이 있다
하지만 채용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대학 졸업생들이라면 “그래도 삼성인데, 졸업 전에 한번은 봐야지”라는 말을 당연하게 주고받는다고 한다. 학생운동 경력이 화려한 운동권 출신들조차 삼성에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학력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소 한 번쯤은 삼성 입사를 희망하며, 이런 분위기는 해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 만연된 ‘1등 주의’, ‘명문 선호의식’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박탈감이 삼성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을 야기시켰다고 진단한다.
위키피디아의 기고자로 활동을 해왔던 소설가 니컬슨 베이커는 위키피디아 성공의 주 요인으로 “그때까지 신임받지 못했던 자들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위 논문을 쓰지 못한 사람들, 게임작가, 만화책 수집가, 텔레비전 시청자 등 사회에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몰두해 온 이들 수백만 명에게 위키피디아는 ‘편집자’라는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인류 전체의 대의를 위해 전진하도록 하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동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초일류 기업 삼성이 수많은 차별적 요소를 없애고 모든 이들에게 취업의 문호를 개방한 데 대해 구직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어찌 보면 위키피디아의 사례와 비슷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명문’, ‘1등’이라는 수식어에 가려져 제대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젊은 구직자들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치른다는 것은 위키피디아의 ‘편집자’ 자격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로 여긴다는 것이다.
대기업 인사 담당 관계자는 “이들에게는 삼성 입사가 또 하나의 인생역전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아무리 채용 규모를 늘린다더라도 대기업, 특히 삼성 입사는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기회’는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젊은이들로서는 삼성으로 눈이 향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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