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지난 13일 종영한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밀회'(극본 정성주·연출 안판석)는 두 가지 재미의 축을 가지고 있다. 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김희애)과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가 스무살 차이를 극복하고 키워 나가는 애틋한 사랑, 그리고 서한아트센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상류사회의 비리와 부당거래가 시청자의 눈을 붙들었다.
상류사회의 속살을 드러내는 중심에 서영우(김혜은)가 있었다. 첫 회부터 혜원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가 하면 한성숙(심혜진)과 벌인 변기 난투극은 단숨에 시청자를 '밀회' 속으로 끌어들였다. 실제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지난 22일 서울 충정로 아주경제 본사에서 만난 김혜은(41)은 맡은 역할에 대한 확고한 생각과 연기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진 배우인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소탈한 사람이었다.
"서영우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인물이에요, 화가 났을 때 그걸 억누르지 못하는 거죠. 재벌집 딸에 겉으로는 행복하게 살 것 같지만 안하무인은 기본, 사람을 돈으로 사려고 해요. 사랑을 구걸하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도 모르죠. 영우의 속을 들여다보면 정말 가진 것 하나 없는 불쌍한 사람이에요."
김혜은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돈으로 키워지는 환경에 그대로 노출된 영우를 불쌍히 여겼다.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캐릭터에 빠져들었다. "영우를 연기할수록 그 안에 채워진 분노와 아픔, 외로움이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사랑에 목마른 서영우이기에, 김혜은이 최고의 대사로 꼽은 것 역시 아무 조건 없는 사랑의 소중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었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고 다독이는 선재(유아인)와 혜원(김희애)을 보고 "정말 좋아하나 봐"라고 말하던 영우.
"그 짧은 대사 한 마디에서 사람과 사랑에 목마른 영우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사람과 사랑을 그리워하는 영우의 인생 자체가 그대로 녹아든 대사였죠."
영우를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김혜은의 실제 삶은 오히려 혜원에 가깝단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인 김혜은은 "주변에 재벌집 딸이 많았다. 오혜원의 감정이 잘 느껴졌다. 배려심이 넘치는 친구가 대부분이었지만 소통하는 법을 어려워하는 친구도 있었다. 상처가 하나도 없는 사람과는 대화하는 일도 어렵더라. 걱정거리가 없으니 대화를 할 때는 즐거운데 가슴을 치는 무언가는 없다"고 말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김혜은은 스스로 음악적 재능에 한계를 느끼는 과정에서 클래식계의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을 느꼈고,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성악 아닌 다른 일을 찾게 됐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1997년 청주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2004년까지 MBC 기상캐스터로 활약했다. 이후 배우로 전향한 김혜은은 연기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배우라는 직업은 권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돈으로 이야기가 풀어지는 직업도 아니에요, 오직 배우라는 말밖에는 없는 거죠. 세상 어떤 화려한 수식어를 갖다 줘도 연기를 못하면 끝이에요. 부지런히 변신해야 하고 진심으로 캐릭터에 빠져야 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진실한 소통이 있을까 싶습니다."
"연기가 갑"이라며 행복한 웃음을 보이는 늦깎이 배우 김혜은의 고백에서 과감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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