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옛날 어머니가 하셨던 똑같은 일을 아이들에게 반복할 때면 문득 옛일이 떠오르면서 피식 웃게 된다.
그래도 그때는 죽지 않을 정도의 컨디션이면 무조건 학교에 가야하는줄 알았다. 오죽하면 졸업할 때 다른 상은 못 받아도 개근상은 받으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전쟁을 거치며 힘든 상황 속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던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은 학교라는 존재를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자식들의 밝은 미래를 보장해 주는 도깨비 방망이로까지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미국에 와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가 조금만 열이 나도 학교에선 오지 말란다. 빨리 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고 열이 내린 다음 다시 학교에 보내라는 것이다.
학교에 안 가면 사단이 나는 줄 알고 있는 이민 1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아이들에게 병을 옮기지 않게 해야 한다는 방침 때문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조치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얼마전 버지니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여학생 한 명이 유치원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3년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개근을 했다는 이야기가 지역 언론은 물론 전국방송에서까지 톱뉴스로 다뤄지기까지 했다.
물론 요즘은 한국도 많이 바뀌어서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학교에 이야기하고 빠질 수 있으며, 또 예전같이 결석에 대해 죄의식을 갖는 부모나 학생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미국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결석이 많다. 엄밀히 말하자면 결석은 아니다. 아침에 학교 출결석 전화번호(Attendance Line)로 전화를 걸어 아이의 이름과 담임선생님, 학교를 빠지는 이유만 음성메시지에 남기면 그만이다. 결석처리는 물론 안된다.
학교 일정시간을 보면 한국보다 많이 짧다.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초등학생의 경우 오전 9시에 수업을 시작해 오후 3시 정도면 끝난다. 중학교는 8시부터 3시 정도다.
한국사람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가장 선호하는 곳 중 하나라는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의 경우, 월요일은 2시간 일찍 수업이 끝난다. 교사들의 교육계획준비 시간을 주기 위해서란다.
그런데 지난 26일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앞으로는 월요일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종일 수업을 하도록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은 사전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거쳐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월요일 종일수업을 찬성한다는 대답이 절대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 부모들 같으면 조금이라도 자녀들이 더 많이 공부해서 더 많은 것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월요일 종일제를 지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부모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이러한 결정이 맞벌이 부모들의 데이케어, 그러니까 부모가 없는 동안 아이들을 대신 맡아 돌봐주는데 드는 비용을 줄이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부모들도 자녀들의 교육에 많은 신경을 쓰는 편이다. 학교에서 무슨 행사라도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찾아 다니고, 자원봉사 또한 열심이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들의 성적이 조금이라도 내려가면 야단치고 소리지르고 난리(?)를 치지만 미국 학부모들은 ‘다음에 더 잘 하며 되지’라고 하면서 격려해 준다고 한다.
미국 부모들 역시 아이가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업 얻길 원하지만 말 그대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웬지 한인 아이들은 어두워보이는건 왜일까. 부모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의 ‘기’가 죽는건 아닌지 걱정될 때가 많다.
개근상은 못 받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다니고, 부모의 욕심 보다는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는게 정말 현실에선 이뤄질 수 없는 것인지, 학교에 가는 이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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