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진한 피’ 범 삼성가 장손 이재현 회장 감싸 안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4-08-28 17:1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돈 보다 진한 것은 역시 ‘피’다.

아무리 잘못을 했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감싸 안을 수 있는 그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이들은 가족, 그리고 친척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가 일가가 1600억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범 삼성가에서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낸 배경에도 결국은 ‘가족애’가 우선이라는 절대 불변의 진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삼성그룹의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 CJ그룹으로 독립했지만 어찌됐건 이재현 회장은 집안의 장손이다. 시대가 변했지만 집안의 장손은 어찌됐건 성공해야 한다는 게 한국의 정서다. 집안을 이끌고 대소사를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물려받은 숙명을 인정하고, 동생과 친인척들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점은 굳이 들쳐내지 않아도 되는 암묵적인 합의다.

홍라희 관장과 이재용 부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이건희 회장의 둘째형인 고 이창희씨의 부인 이영자씨, 차녀 숙희씨, 3녀 이순희씨 등이 지난 19일 서울고법 형사10부(권기훈 부장판사)에 제출한 탄원서에서도 장손을 아끼는 친척들의 마음이 드러났다.

탄원서에는 이재현 회장이 예전부터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고, 지금의 상태로는 수감생활을 견뎌낼 수 없으니 선처를 해달라는 내용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회장의 부재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하고 투자 타이밍을 놓쳐 CJ 그룹 경영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도 고려해달라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2년 이후 지속된 삼성-CJ간 유산상속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마지막 신호로, 범 삼성가 차원에서 화해 모드로 돌아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과 CJ는 지난 2012년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동생인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유산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이가 갈라졌다. 이후 삼성 직원이 이재현 회장을 미행하는 사건이 불거졌고, 고 이병철 회장 선영 출입문 사용 문제 등을 놓고도 다툼을 벌이는 등 양측간 감정의 골은 돌이킬 수 없이 깊어만 갔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간 다툼의 과정에서 이재현 회장의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서 그의 불운은 시작됐다. 이재현 회장은 1990년대 중·후반 조성한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운용하면서 조세포탈과 횡령·배임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작년 7월 구속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다음달 4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8월 신장이식 수술을 위해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이재현 회장은 항소심 재판부가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한차례 수감됐지만 이후 다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검찰은 지난 14일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이 회장에 대해 징역 5년과 벌금 1100억원을 구형했다.

아들이 재판을 받는 모습을 바라본 이맹희 전 회장은 이건희 회장과의 갈등을 중단하며 더 이상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삼성가 내에서도 이재현 회장의 건강 상태가 크게 악화됐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어떻게든 그를 살려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00일이 넘게 입원생활을 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이 언제 건강을 회복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장손인 이재현 회장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집안으로서도 돌이킬 수 없는 큰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위기감도 돌았다.

범 삼성가가 제출한 탄원서가 항소심 선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지는 알 수 없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다만, 기업 오너로서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은 기업으로 돌아가 키워내는 것이다. 삼성가에서 탄원서를 제출한 것도 이재현 회장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살려 사업의 성공으로 국민들에게 보답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재현 회장 또한 지난 14일 건강 악화로 신경안정제를 맞으며 결심공판에 출석한 이 회장은 “모든 것이 제 잘못이다. 살고 싶다. 살아서 제가 시작한 CJ의 문화사업을 포함한 미완성 사업을 완성하고 싶다”며 재판부의 선처를 호소했고, 앞서 자필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이러한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한편, 삼성 일가의 탄원서 제출로 삼성-CJ간 관계가 갈등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들은 손을 맞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홍라희 관장 등이 이재현 회장의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한 목소리로 선처를 부탁한다고 재판부에 호소하고 나선 것은 두 그룹간 화해를 유도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삼성 관계자는 “오너 일가 차원에서 결정한 사안이니 만큼 자세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이건희 회장의 장기 입원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범 삼성가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가족들 간 갈등의 소지를 해소하는 한편, 투병 와중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집안의 장손인 이재현 회장을 살려야겠다는 심정에서 탄원서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CJ측은 “이재현 회장의 건강이 좋지 않고 그룹 경영도 차질이 빚어지자 가족의 일원으로 안타까움과 대승적 차원에서 탄원서를 낸 것으로 보인다. 감사할 따름이다”며, “이번 탄원서를 계기로 가족 간 화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CJ측은 탄원서가 선고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판단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