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벌어진 신조 투자 패턴에 대변화는 한국이 수혜를 독점하며, 중국과 일본의 추격 속에서도 한 발 앞선 경쟁력을 유지해가고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조선업계 건조량은 지난 20년간 약 8배 증가했다. 1990년대 초반 1900만DWT(재화중량톤수)에서 1억6600만DWT를 기록한 지난 2011년까지 끊임없이 성장한 조선업 성장세는 2013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208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이 가시화 된 그해 신조선 인도량은 1억900만DWT로 떨어졌다.
클락슨 리서치가 시기별로 선종별 신조선 투자 추이를 분석한 결과 조선업 붐이 일기 전 단계인 1996~2002년 시기에는 전체 투자의 50%가 벌커와 특수선 분야였고, 42%는 탱커와 컨테이너선, 나머지 7% 정도는 가스선이 차지했다. 호황기였던 2003~2008년 기간에도 벌커·특수선은 53%, 탱커·컨테이너선 41%, 가스선 6%의 비중으로, 비슷한 추이를 나타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비중이 바뀌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2014년 현재까지 기간 동안 벌커와 특수선 신조 투자 비중은 무려 69%까지 치솟은 반면, 탱커와 컨테이너선 비중은 22%로 떨어졌고, 가스선 부문은 9%로 상승했다.
벌커는 2009년 이후 신조선 투자의 25%를 차지했다. 전 세계 해운사 선대의 40% 비중을 차지하는 벌커는 다목적성과 지속적으로 몰리는 화물 수요 덕분에 선주들이 가장 많은 발주가 이뤄지는 선종으로, 벌커를 주력으로 건조하는 일본과 중국 조선소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불황기 ‘진짜 효자’는 특수선이었다. 특수선은 2009년 이후 현재까지 기간 동안 전체 신조선 투자의 44%를 차지했다. 이는 2003~2008년 기간의 27% 비중보다 크게 오른 것이다. 클락슨은 특수선 부문에서 한국이 압도적인 수혜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해양 자원개발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해양 관련 특수선(해상풍력 관련 포함) 발주가 증가했고 이를 특히 한국 조선소들이 대거 가져갔다는 것이다. 해양 부문 신조선 투자액은 2008년 340억달러에서 2012년 470억달러로 급증했다.
한국도 과거에는 벌커와 탱커, 컨테이너선 등을 통해 조선산업을 키워왔는데,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선 뒤 어어진 중국의 추격에서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구조를 빠르게 재편했다. 이를 통해 벌커는 시장을 내줬으나 특수선 분야에서 절대적인 경쟁 우위를 점하는 계기가 됐다.
다만, 주력 선종의 변경에는 항상 어려움이 뒤따른다. 클락슨은 “한국 대형 조선사들은 현재 다양한 ‘사상 최초’의 특수선들을 건조하면서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조선업계 관계자도 “이들 세계 최초 특수선들은 선주사들조차도 처음 발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설계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요구에 그나마 정확히 대처할 수 있는 건조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는 국내 조선 빅3 뿐이다. 최근 대손충당금을 회계에 선반영하는 등 국내 조선업계에 위기설이 불거지고 있지만 한계를 넘어서면 조선 기술력은 한 단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탱커는 조선업 붐 이후 고유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부진한 경제성장, 최대 원유 수입국이었던 미국이 셰일가스 개발을 통해 에너지 자급력을 높이면서 수요가 줄어들었다. 컨테이너선도 교역량의 성장세가 둔화, 컨테이너 선대의 공급과잉이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어 발주는 정체 상황이다. 여기에 대형 선사들을 중심으로 1만30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급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대거 투입해 원거리 해상운송을 독점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중대형 컨테이너선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편, 클락슨은 불황기 이후에도 신조선 투자의 변혁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클락슨은 “불황기 이후 선주들의 다음 발주 선박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면서도 이는 종종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선종이곤 했다고 전했다. 즉, 세계 경제의 움직임, 에너지 시장의 변화, 해운 시장의 추세, 신조선 수급상황 등에 따라 조선소들이 유연하게 전략 선종을 수정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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