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특수강 시장 판도 변화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경쟁에서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동부특수강 인수전은 사실상 정 회장과 범 포스코 연합간의 경쟁구도로 진행돼 왔다는 점에서 이번 승리는 철강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영향력 확대와 더불어 ‘수요자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전망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24일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동부특수강 인수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11월 말까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12월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등 행정 절차를 밟은 후 내년 1월이면 동부특수강은 현대차그룹에 합류하게 된다.
공급과 수요를 독점할 것이라는 지적을 무릅쓰고 현대차그룹이 특수강사업을 강행하는 이유는 분명 하다. 표면적으로는 2016년 준공을 목표로 당진제철소에 건설하고 있는 연산 100만t 규모의 특수강 공장과 함께 특수강 상·하공정을 모두 갖추기 위함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고로를 통한 쇳물 생산에 이어 포스코를 겨냥한 정 회장의 두 번째 공격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현대차그룹은 분할 전 현대그룹 시절부터 포스코와 잠재적 갈등 관계를 형성해 왔다. 일관제철소 건설에서부터 제품 공급 파동까지, 최대 공급업체와 최대 수요업체간 충돌의 역사는 다시 들쳐볼 필요도 없을 정도다.
아버지 고 정주영 명예회장에 이어 정몽구 회장이 고로 건설에 열의를 보인 이유도 결국 ‘탈 포스코’였고, 당진 제철소 건설 직후 단기간 내에 현대·기아차 완성차용 강판을 현대제철의 강판으로 대부분 바꾼 배경에도 이러한 감정적 요소가 다분히 실려 있다.
동부특수강 인수전도 이러한 분위기의 연장선이었다. 현대제철은 동부특수강 인수가 “소수업체가 독점적 지위를 영위하던 특수강 시장이 수요자인 부품업체 중심의 시장구조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말한 소수 업체는 포스코특수강과 세아베스틸 등을 말한다. 세아그룹은 동국제강그룹과 함께 ‘범 포스코 연합’에 속하는, 포스코와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들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현대제철은 세아를 포스코와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이겨내야 하는 대상에 올려놨다.
고로 제철소를 완공한 직후 현대제철이 특수강 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업체간 신경전은 본격화 됐다. 지난 4월 현대제철이 특수강 공장 건설에 들어가자 포스코는 포스코특수강을 세아그룹에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세아그룹은 매물로 나온 동부특수강 인수전 참여를 발표했다. 이 시나리오가 예정대로 완성됐다면, 특수강 시장은 포스코의 지원을 등에 업은 세아그룹이 장악하게 되며, 포스코는 안정적인 매출선 확보가 가능해 국내 철강 시장에서 ‘범 포스코 연합’의 지위는 유지될 수 있었다.
현대제철, 더 나아가 현대차그룹은 자칫 특수강 사업을 본격화 하기도 전에 시장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당초 관망하고 있던 동부특수강 인수전 참여를 결정한 것도 사업의 조기 정착 못지않게 포스코·세아 연합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특수강 인수로 현대차그룹은 철강시장 패턴을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주도’로 180도 바꿨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기아자동차, 현대로템, 현대위아, 현대건설 등 철강소재·부품의 최대 수요기업이 몰려 있어 자체적으로 대규모 캡티브 마켓(계열사간 내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범 현대가’인 현대중공업그룹까지 더하면 철강 수요시장에서 가장 큰 고객이다.
고로 일관제철소를 완공한 뒤 현대제철이 현대차와의 거래 비중을 늘리자 단순 추정치로 분기당 평균 2000억원대였던 포스코의 현대차그룹 거래 금액이 반토막 났고, 현대중공업이 현대제철 후판 구매량을 늘리면서 동국제강이 흔들렸다. 특수강 부문에서도 비슷한 추이가 연출될 것이 분명하다. 많은 철강사들이 이제부터 현대차그룹의 전략에 맞춰 제품 개발 및 생산을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동부특수강 인수로 더불어 현대차그룹의 사업 수직계열화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됐으며, 현대제철을 철강업계 최고 기업으로의 성장시키겠다는 정 회장의 목표도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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