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간 ‘반격’과 ‘역습’이 뒤엉킨 이른바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인 정윤회씨를 축으로 한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의 라인으로 알려진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박관천 경정(당시 행정관) 측 주장이 연일 대충돌하면서 의혹이 더 커지는 양상이다.
여기에 비서라인 권력암투 의혹의 정점에 선 청와대가 검찰의 조속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한발 빼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 반면 범야권은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파상공세에 나섰다. 의혹만 있고 검증은 없는, 최악의 상황이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3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임관혁 부장검사)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 박 경정의 자택 등 5∼6곳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정치권과의 움직임과는 또 다른 이번 사태의 축으로 작용, 의혹만 확대 재생산되는 모양새다.
정윤회 국정개입 문서 실체와 내용 진위 여부를 비롯해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장 좌천 배경 △문건 유출 경로와 주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개입 여부와 박 회장의 침묵 이유 △박 대통령 인지 여부 등 5대 미스터리를 둘러싼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형국이다.
◆‘정윤회 비선개입’ 문건과 朴라인의 좌천, 왜?
첫 번째 의혹은 세계일보가 지난달 28일 보도한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의 진위 여부다. 이 문건은 박 경정이 지난 1월6일께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人)의 장막 논란에 선 정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축출 시나리오를 짰다는 게 문건의 요지다. 문건 실체와 내용 진위 여부는 정권의 문고리 권력 의혹이 ‘찻잔 속 태풍이 될지, 메가톤급 이슈로 부상할지’를 가늠하는 척도다.
정씨는 이와 관련, “민정수석실에서 조작한 것(중앙일보)”이라고 말한 반면 조 전 비서관은 “(진실일 가능성이) 6할 이상(조선일보)”라고 맞받아쳤다.
현재 여야 정치권의 말을 종합해보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했다는 점 △김 실장에게 보고된 문건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내용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문건 자체는 조작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누가, 왜, 어떤 경로로 문건을 유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건 자체는 청와대 문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이 문건 작성 직후 3개월, 1개월 만에 청와대를 떠난 경위가 석연치 않은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씨의 비선실세 의혹을 작성한 이들이 ‘눈엣가시’로 전락하면서 사실상 좌천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다만 문건이 통상적인 정식 문건과는 달리 ‘∼했음’, ‘∼라고 함’ 등의 문체로 돼 있어 청와대의 주장대로 ‘찌라시’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문건 유출 경로와 金·朴 침묵…대통령 인지 여부도 주목
문건 유출의 주체와 경로도 핵심 쟁점이다. 이는 검찰의 수사 핵심인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여부와 직결한 만큼 비선실세 간 권력추의 쏠림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일단 청와대는 문건 유출자로 박 경정을 지목했다. 검찰이 이날 박 경정의 근무지와 자택 등을 전격 압수수색한 까닭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은 “5∼6월 민정수석실에 올라간 한 문건에는 박 경정이 아닌 제3자가 범인으로 지목돼 있다”고 말했다. 박 경정이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유출 사실을 부인한 대목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주목할 부분은 박 경정이 아닌 제3자가 유출했을 가능성이다. 현재 국회에는 ‘A 의원’, ‘B 의원’ 등 집권여당 실세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집권여당 내 권력암투에 따른 권력 누수인 ‘조기 레임덕’ 현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셈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도 여권 한 의원을 거론하면서 “정윤회 국정농단 문건에 대해 모르겠느냐”며 “상황이 상황인 만큼 굉장히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의혹이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일보는 이날 ‘박지만씨, 靑문건 다량 유출 진정’이란 제하의 기사에서 “박 회장이 지난 5월 김 실장과 당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에게 문건 유출에 대해 제보했으나, 김 실장이 이를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남 원장의 사의는 같은 달 22일 수리됐다.
김 실장이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을 묵살한 이유와 박 대통령에 대한 보고 등을 둘러싼 진실 여부에 따라 사건이 ‘대통령의 직접적 책임론’으로 격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정윤회 국정농단의 진실규명을 위한 상실특별검사제와 국정조사 도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이번 사건의 핵심이 문건의 진위 여부에 있든, 유출에 있든 1차적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며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전환을 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라고 청와대 시스템의 대전환을 주장했다.
한편 논란의 당사자인 박 회장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주경제는 이날 박 회장과의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박 회장이 측근들에게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입을 다물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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