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부를 대표하는 재외공관은 세계 각국에 178곳이 있다. 문화부 산하의 해외문화원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훨씬 많다. 대개 해외문화원에서는 간간이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전시형식은 매우 소극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가령 몇몇 선이 닿는 일부 작가이거나, 전형적인 한국의 토속적인 색깔을 보여주는 주제전이 대부분이다. 이와 비교할 때 외교부 산하 대사관이나 영사관의 공관들은 더 열악하다. 심지어 수십 년째 걸린 작품을 교체하지 못한 곳도 여러 곳이라고 한다. 그래도 외교공관은 한 나라의 얼굴인데,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트렌드를 감안할 때 10년 넘게 같은 그림은 해도 너무했다.
이것은 외교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3억 원 정도로 180여 곳을 관리하는 열악한 예산의 문제도 아니다. 정말 심각한 점은 재외공관을 그렇게 방치해도 된다는 인식들이다. 겉으론 앞 다퉈 문화강국을 외치면서, 이번 정부 출범이후 경제부흥ㆍ국민행복ㆍ문화융성ㆍ평화통일 기반 구축 등 4대 국정기조에서도 보란 듯이 문화를 강조하면서 말이다. 문화는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잘 사는가’의 차원이다. 그래서 문화에서만큼은 ‘체면’이 중요하다. 나 혼자도 좋아야 하지만, 더불어 좋은 것이 더 우선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융성의 실천의지가 국내에만 머문다면 반쪽짜리 성과이다. 국가 안팎으로 고른 문화융성의 결실을 맺어야만 문화경쟁력을 기대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살만한 나라’라는 체면이 서는 것이다. 선진국 반열에선 ‘문화’와 ‘복지’는 한 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무대에서 리더로서 나서고 싶다면 ‘문화복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재외공관의 역할과 비중은 절대적이다. 외국인 입장에선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처음 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선입견을 갖고 한국을 찾게 할 것인가도 우리 의지에 달린 셈이다.
문화선진국은 결코 ‘한강의 기적’이 될 수 없다. 오랜 시간과 비용의 투자가 필수적이다. 정부 관계자나 정책 입안자부터 ‘외교부의 재외공관 창구를 통한 문화외교’가 국가 경쟁력에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문화외교의 비중과 국격에 상응한 미술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작품구입 예산의 증액이 필요하다. 시행 중인 재외공관 문화전시장화사업이 큰 활기를 띌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178곳의 재외공관이 바로 한국 예술의 우수성을 알리는 첫 관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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