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설 택배 배송 전쟁 "아침·점심·저녁을 컵라면 하나로...담배 한 개비 태울 시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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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2-1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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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차." 14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CJ대한통운 동작지점에서 택배기사가 이날 배송할 택배들을 차량에 싣고 있다. [ 사진=남궁진웅 기자]


아주경제 김현철 기자 = "차 들어왔습니다."

14일 새벽 7시 CJ대한통운 동작지점의 하루를 여는 소리다. 지방 허브터미널에서 도착한 길이 20여m의 16t 대형트럭 문이 열리자 2000~3000개의 택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직원들은 곧바로 컨베이어 벨트에 택배를 올려 놓기 시작했다. 택배기사들은 길게 늘어진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택배가 오는 것을 살핀 후 자신의 배달 지역 물건을 골라냈다.

대형트럭의 택배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다 옮겨지면 택배기사들은 배송할 순서대로 차에 택배를 싣기 시작한다. 각 허브에서 당일 배송할 택배들이 오전 내내 물류센터에 오기 때문에 가장 나중에 배송할 주소지 물건부터 차 안쪽에 넣고, 첫 배송 지역 택배는 일단 밖에 쌓아 놓는다.

이렇게 첫 분류가 끝난 9시경. 택배기사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컵라면으로 아침 겸 점심을 때운다. 설 등 명절 특수 기간은 배송물량이 많아 오후 11~12시까지 배송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게 저녁식사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택배기사들이 이날 배송할 택배를 탑재하고 배송을 시작하는 시간은 오후 12시가 넘어서다. 기자가 동승한 최희영씨는 노량진 고시원 지역을 배송하는 배터랑이다.

최씨의 첫 배달지는 15층 고시원. 1~10층까지는 고시원·독서실, 11~15층은 오피스텔 건물이다. 20여개의 택배를 박스에 담고 엘리베이터로 15층까지 올라갔다. "딩동." 벨을 눌렀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다. 허탈한 마음에 택배를 다시 박스에 담고 다음 배달지인 10층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그 많은 택배를 들고 내리 뛰는데 아무것도 들지 않은 기자보다 훨씬 빠르다. 그렇게 1층까지 배송을 마치고 고객들이 자리에 없어 전달하지 못한 택배는 경비실에 맡긴다.

고시원에 배달되는 물품은 시간이 없는 고시생들이 인터넷을 통해 주문한 생필품이 대부분이었다. 명절이지만 공부하느라 고향에 오지 못하는 자식들을 위해 건강식품이나 홍삼, 과일 등을 보낸 부모들의 택배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2~3개의 고시원을 돌자 최씨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배송한지 2시간이 지났지만 담배 한 개비 태울 시간도 없다. 반품을 받기로 한 고객과의 시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단은 차 안에 가득 쌓여있는 택배를 빨리 배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꼬인 언덕을 오르며 요리조리 차를 운전하던 최씨는 "겨울철에는 차로 이 길을 오를 수 없어 지게에 택배를 싣고 직접 언덕을 오른다"고 말했다.

한 골목에 차를 세우고 배송을 하는 동안 길가던 학생이 멈춰선다. 오늘 배송 예정인 물건을 직접 받기 위해서다. 최씨는 학생의 이름을 물은 뒤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택배를 찾기 전 송장을 미리 확인하고 학생에게 전화를 건다. 집으로 직접 배송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혹시라도 모를 배송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고객이 바로 앞에서 전화를 받는 것을 확인한 뒤 최씨는 택배를 건넨다. "기사님 감사합니다." 학생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동작지점은 이번 설 특수 기간에 하루 평균 3만여개의 택배 물량을 배송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20% 늘어난 수치다.

택배 기사들은 보통 하루 250개 택배를 배송하지만 요즘 같은 특수기는 400~500개까지 늘어난다.

특히 요즘같은 특수기에는 고객들과 눈 마주칠 시간도 없다. 시간당 최소 40개를 배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대규 동작 지점장은 "최근 택배 기사들이 시간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민원이 많이 접수된다"며 "그래도 고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택배를 전하기 위해 끼니도 거른 채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조금씩만 이해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택배기사가 배송할 순서대로 차에 택배를 쌓고 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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