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만 네살짜리 늦깎이 딸아이를 둔 박은정(41·전북 전주시 삼천동)씨는 요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12시간 가량 식당 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박씨는 딸을 어린이 집에 보내고 있지만 이달부터 누리과정 보육료 지원이 끊긴다는 소식에 걱정이 태산이다. 빠듯한 살림에 보육료 지원마저 중단된다면 아이 교육비로 매월 30여만원을 추가 부담해야 할 판이다. 생활이 더욱 쪼들릴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누리과정 예산이 중단되면 어린이집 사정은 더욱 심각해진다. 당장 휴·폐업 문제로 직결될 만큼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누리과정 보육료는 1명당 월 29만원 정도 지원됐다. 이중 22만원은 아동 몫으로, 7만원은 시설 몫으로 지원됐다. 어린이집의 운영지원비는 규모와 영유아수에 따라 매월 적게는 수 백만원에서 많게는 몇 천만원대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누리과정 지원 중단은 이들에게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는 “국가가 공정한 교육기회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부모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만 3~5세 무상보육을 한다고 해놓고 갑자기 지원을 중단해 버린다는 게 대체 말이 되느냐”며 “지원이 없어지면 우리같이 영세한 어린이집은 버텨나갈 재간이 없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어린이집이 문을 닫게 되면 당연히 교사들도 일자리를 잃게 된다. 해당 교사들의 대량 실직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원생모집에 애를 먹고 있는 일부 어린이집에서는 벌써부터 보육교사를 줄이는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보육료 부담주체가 정부·지자체에서 지방교육청으로 바뀐지 올해로 3년째다. 전북도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 지원을 4월부터 아예 중단해 버렸다. 올 예산안에 편성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3월로 소진됐으나 도교육청은 추가예산 편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전북은 전국에서 최초로 ‘보육대란’이라는 초유의 파국을 맞을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다.
도교육청은 “현행 법규정상 정부가 부담하는 게 옳다”는 원칙론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은 전액 국고로 편성해야 한다는 논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파행은 막아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각 시·도 교육청은 누리과정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 공약사항이므로 당연히 국고에서 지원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지방재정법을 개정하더라도 지방채 발행을 통해 누리과정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지방채 발행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전북어린이집연합회는 지난 1일 임원회의와 시·군지회장회의를 잇달아 열고 이달부터 어린이집 누리과정 보육료를 지원하지 않기로 한 전북도교육청에 대한 감사원 국민감사를 조만간 청구하기로 했다. 이후 보육료 지원을 촉구하는 도내 및 상경 집회를 열기로 의결했다. 6월께는 김승환 교육감의 재신임 여부를 묻는 주민소환도 불사키로 결의했다.
연합회는 이전에도 수차례에 걸쳐 누리과정 예산 지원을 촉구하는 집단 시위를 벌여왔으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집단 휴원에 돌입하자는 강경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전북도의회 최인정(교육위)·박재만(문건위) 의원도 지난달 28일부터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지원 촉구하는 거리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명운동 현장에서 최 의원은 “만3∼5세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데도 관련 예산을 모두 시·도교육청에 떠넘기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영·유아보육법'을 개정해 관련 예산을 중앙정부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한편, 한편 전북도내 어린이집 아동은 2만3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누리과정 파문이 극에 달한 최근 3개월(1~3월) 새 도내 어린이집 누리과정 아동 1,300명 가량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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