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아람 기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위안부 강제동원 등 과거사 사죄 언급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미국 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고 외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일 동맹의 격상을 한껏 부각시키며 환영 일색이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국내외 심상치않은 비판 기류를 의식, 과거사 문제만큼은 논평의 수위를 조심스럽게 조절하는 분위기다.
미국 내 정치권, 언론, 전문가 등 곳곳에서 아베 총리의 연설에 대한 쓴소리가 쏟아졌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미 공화당 하원의 에드 로이스(캘리포니아) 외교위원장은 아베 연설 직후 성명을 내고 “오늘 아베 총리의 연설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며 “아베 총리는 동아시아 관계를 괴롭히는 과거사를 해명할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스티브 이스라엘(민주·뉴욕) 하원 의원도 논평을 통해 “아베 총리의 연설에 반성과 희생자들에 대한 존중이 없었던 것이 매우 실망스럽다”며 “아베 총리는 기회를 놓쳤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의원은 전날 한인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아베 총리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미 워싱턴 정치전문지 ‘롤 콜’은 이날자 1면 기사에 “어제 아베 총리의 연설은 완벽하게 수긍할만한 것이었지만, 한가지 눈에 띄게 빠진 것이 있다”며 “바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명시적으로 사과하라는 요구를 회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 일레인 김 교수도 이날 미국 CBS 방송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의 어두운 역사가 사라지고 미국 교과서에서 실린 역사적 내용이 다시 쓰여지길 바라고 있다”며 “이는 어리석은 일이며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규탄했다.
이 같은 기류를 감지한 오바마 정부는 과거사 언급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아베 총리의 연설 중 과거사 언급 부분에 대해선 직접적인 평가는 피한 채 “주목한다”(take note) 정도의 선을 유지했다. 한·일 간의 과거사 갈등을 매듭짓고 싶어하는 미국이지만, 한국의 부정적 반응과 미국 내의 비판 기류를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패트릭 벤트렐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우리는 일본이 더욱 적극적으로 세계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비전을 환영한다”며 “특히 우리는 아베 총리가 전후 미일 관계의 화해에 대해 긍정적 메시지를 보낸 것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벤트렐 대변인은 그러면서 아베 총리의 과거사 언급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베 총리가 고노담화를 포함해 역대 총리들에 표현된 역사인식을 계승한다고 언급한 대목을 주목한다”고 밝혔다.
국무부도 “우리는 아베 총리의 2차대전 이후 미일 관계의 화해와 관련해 건설적 메시지를 보낸 것을 평가한다”면서 “우리는 과거사와 관련해 전직 총리들에 의해 표출된 견해들을 지지하겠다는 언급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아베 총리는 미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진주만 기습을 거론하며 “깊은 경의와 영원한 위로”를 표명한 반면 한국 등 주변 피해국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사죄 표현없이 “아시아 국가 국민에게 고통을 줬다”라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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