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군득 기자 = 한국사회의 가계가 무너지고 있다. 부채와 청년실업, 고령 빈곤이 ‘가계 3중고’로 떠오르면서 가계의 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소득은 430만2000원으로 전년대비 3.4% 상승한 반면 지출은 335만6000원으로 2.9% 증가하는데 그쳤다. 명목상 가계소득은 증가했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지출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작년 평균소비성향 역시 72.9%로 2003년래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가계 부담이 커지면서 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출범 초기 가계 회복을 위한 방안으로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에 착수했지만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고령화 사회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가계는 더욱 위축됐다.
결국 중산층이 살아나지 못하면서 가계 부채는 가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상대적으로 소비가 많은 5월은 더 이상 ‘대목’이 아니다. 얇아진 지갑 탓에 지출이 줄어들면서 근로자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정부는 임금인상을 가계 회복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노사정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모양새다. 가계의 주축인 40~50대는 부채로 인해 허덕이고 있다.
중산층을 형성하는 가계평균 소득 40~60%인 3분위와 소득 60~80%인 4분위 부채 증가율이 각각 6.6%와 4.2%로 가장 높게 나타난 것도 한국사회가 가계 부담이 얼마나 큰지 방증하는 대목이다.
가계 부담으로 지출이 줄어들자 장난감·꽃 등 유통업계도 울상이다. 유통업계 대목으로 불리는 가정의 달 5월은 언제부터인가 매출이 줄어드는 추세다. 소비자 지갑이 얇아진 탓에 씀씀이가 예년만 못하다는 게 업계의 현실이다.
실제로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조사한 올해 5월 평균 지출액은 약 41만원이다. 이는 지난 2013년 평균 50만원, 2014년 평균 60만원과 비교해 크게 하락한 수치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사회의 가계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즐거워야 할 가정의 달이 생활고와 노후걱정으로 인해 팍팍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산층의 기준이 모호해진데 대한 사회적 현상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낮아지면서 가계 부담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중산층 붕괴는 청년실업률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청년실업률은 이미 10%를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15~29세 청년 실업률은 10/7%로 지난 2000년 새로운 실업률 제도가 도입된 이후 3월 기준으로 가장 높다.
청년실업이 가계를 위협하는 복병으로 떠오른 것이다. 청년들 구직이 어려워지면서 심각한 돈맥경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니 상대적으로 소비도 줄어드는 상황이다. 소비가 가장 많아야 할 20~30대 연령층이 지갑을 좀처럼 열지 못하고 있다.
40~50대 가장들은 벌써부터 노후가 걱정이다. 가뜩이나 하우스푸어로 평생 빛에 짓눌려 있는데 이젠 의료비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00~2009년 국내 1인당 의료비 연 증가율은 9.3%로 OECD 회원국보다 2.3배 높다. 특히 75세 이상 노인 건강보험 진료비는 10년 새 5배로 급증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에 병원비 부담 느끼는 노인은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다. 이 때문에 노인 44.2%는 기초연금으로 병원비·약값을 해결한다. 이른바 ‘메디컬 푸어’ 시대가 온 것이다.
권규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기대수명이 길어졌지만 노동 공급을 통해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간은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아 모든 연령층 소비성향이 줄어들고 있다. 50대 이상에서 그 정도가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권 연구위원 이어 “60대를 목전에 둔 50대는 소득이 많아도 노후 대비를 위해 더 아끼고 있다”며 “단기적인 수요 진작보다는 구조적인 소비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 은퇴시기를 늦추고 고령층 경제활동 참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확산시키는 등 지속 가능한 소비활성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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