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강승훈 기자 = 박래학 서울시의회은 20대 전자제품 판매사원을 시작으로 30대 개인사업 그리고 지방자치시대 정치에 입문해 기초의원과 시의원까지 바쁘게 살아왔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돈을 벌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광주상고를 나왔고 전자대리점 판매직원으로 일하다 1980년대 컬러TV 보급 때 직접 판매점을 차려 운영했다. 그러다 성동구가 분구(分區))를 한 1995년 3월 광진구가 개청되면서 초대 구의원으로 본격 정치에 입문했다.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국장의 집요한 출마 설득에 결국 항복을 했다는 것이 박 의장 설명이다. 당시 광진구(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추미애 의원과 인연을 맺어 20년째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이후 2002년 6월 제6대 서울시의회로 자리를 옮긴 후 내리 4선(7·8·9대)에 성공했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2회 거쳤다. 그간 시의회에서 문화교육·건설·도시관리·행정자치·도시안전 등의 상임위를 두루 거쳤다. 광진구를 제2의 고향이라고 일컫는 박래학 의장은 이제 스마트폰에 손녀 사진을 넣고 다니는 '젊은 청춘할아버지'라 스스로 부른다.
평소 '군이민위천 민이식위천'(君以民爲天 民以食爲天, 임금은 백성으로 하늘을 삼고, 백성은 먹거리로 하늘을 삼는다)의 고사성어를 자주 인용하는데 먹고 사는 민생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더불어 사회양극화 해소, 일자리대책 마련 등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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