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나무의 생명과 영혼의 울림을 가장 잘 잡아내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는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유명하다. 여든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는 11일부터 서울 서초동 한원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33번째 개인전이자, 30년전 떠난 고국에서의 첫 회고전이다. 회화와 조각, 설치 작품에 이르기까지 70여점을 선보인다.
1960년대 철제 조각으로 시작해 1976년부터 1983년까지 판화 형식을 이용한 회화와 토템 신앙적인 조각 작업을 했다. 이후 아르헨티나에 정착해서 목재를 활용한 조각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이후 상명대 조소학과 교수를 맡으며 중견 작가로 이름을 떨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당시 미대 교수로서의 직위와 작가로서의 한국 화단에서 입지를 갖춘 그의 아르헨티나행은 화제였다. 이유는 '나무'때문이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실험 끝에 한국의 적송과 같은 나무를 오브제로 삼아 작업을 펼쳐오던 그에게 아르헨티나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1983년 12월 조카가 살고 있는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한 달 간 여행을 다닌 게 그 시발점이었다. 파괴되지 않은 자연, 광활한 땅과 푸른 초원, 수없이 널려 있는 방목된 소들의 무리, 하늘과 땅이 맞닿아 사방이 둥글게 보이고, 가도 가도 산은 볼 수 없었다. 사람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고, 씨앗을 비행기로 뿌리고 기계로 추수해서 짐승과 벌레들이 다 먹고 난 후에도 엄청난 곡식들이 풍요롭게 널려 있는 나라. 사람들 또한 자유로우며 여유가 있고, 친절하며 순수했다. 그 중에서도 마음을 가장 유혹한 것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조각재료들로 엄청나게 귀한 돌과 다양한 종류의 나무였다. 끝없는 팜파의 평원이 마치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로 보였고, 결국 아르헨티나에 매료돼 나도 모르게 그대로 머물게 되었다."
196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아르헨티나, 미국, 멕시코, 프랑스, 일본, 브라질, 중국 등에서 32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12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8년 10월에는 사재를 털어 남미 최초의 한국인 작가 미술관인 김윤신미술관(관장 김란)을 부에노스아이레스시에 개관했다.
아르헨티나에서 김윤신미술관은 정치·문화계 인사가 방문하는 한·아르헨티나 교류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또 미술 교사, 학생들이 방문해 김 화백의 조각과 유화를 감상하고 배우는 코스로도 유명하다.
팔순의 작가는 매일 아침이면 미술관에 마련된 아틀리에로 출근해 종일 나무와 씨름한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육중한 목재를 손수 옮기고 다양한 공구를 이용해 이를 조각하며 ‘영혼의 노래, 신을 향한 구도의 길, 예술의 길'에 매진하고 있다. "연장마저 제 몸의 일부가 되고, 잘려나간 단면과 그 속에서 형성된 다양한 선들이 하나의 조화를 이루면서 저 나름대로의 조형언어를 구축하게 됩니다. 수없이 해온 작품 중에서도 같은 형태로 표출된 작품이 하나도 없는 것은 조각 작업 자체가 바로 삶이기 때문입니다." 전시는 7월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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