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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무역]이승만 대통령 “환율인상 절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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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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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동란기의 무역 세태 (1)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950년 6.25 동란은 광복후 자립의 길을 모색하던 한국의 노력을 일거에 날려 버렸다.

무역도 전쟁의 참상을 피해갈 수 없었다. 1950년 7월부터 1951년 5월까지 항구에 쌓여있던 수출품은 다급한데로 구매계약도 없이 일본으로 수출되어 현지 보세창구에 위탁판매 되기도 했다.

또한 수입도 두절됐는데, 안전지대로 피한 재화가 위험한 곳을 찾아 들어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수입은 1949년에 비해 6분의 1로 줄어든 반면 수출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 수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광복 이후 이례적으로 첫 무역흑자(?)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은 한국무역협회가 발간한 ‘무역협회 30년사’에 수록된 6.25 당시의 우리나라의 무역상을 담은 몇 가지 에피소드를 발췌해 소개한다.

◆환율인상은 ‘터부’
6.25동란이 벌어지자 남쪽으로 후퇴를 하면서 한국은행은 화폐 미 발행권을 20억원이나 창고에 둔 채 그대로 내려와야만 했다. 이로 인해 대전에 임시로 주저앉았을 당시 한은은 당장 군에 공급할 돈이 달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태를 벗어나기 위해 한은은 김진형 도쿄 주재 이사를 통해 미 극동군 사령부와 절충하여 일본 대장성으로 하여금 한국은행권을 인쇄해서 발송해 달라고 독촉했다.

맥아더 사령부는 직접 담당 장교를 파견하여 실정을 청취하고 돌아갔으며, 그 후 은행권이 발송됨으로써 겨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한은은 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자기앞수표 1만원권을 발행코자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도 했다.

한은은 대장성에서 인쇄된 은행권의 수송을 위해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계약을 맺었다. 수송료는 월말 지급 조건으로 1회 당시 돈으로 4000달러라는 고액이었다. 문제는 제때 수송료를 지급할 수가 없었고 1.4 후퇴 이후 부산에 임시수도를 정하고 자리를 잡았을 때에는 거액의 수송료가 밀린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여기에 당시 외환결재는 직접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야 했는데 전쟁 중이라 한은측에서도 대통령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때 한은 실무진은 생각하다 못해 재무부와 상의한 끝에 외국에 나가있는 미 군대에서 사용하는 전용 화폐인 ‘미군표’(M.P.C)를 시중에서 구입, 이를 수송료 대신 지불하는 방법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 보고를 받고 집에 돌아온 구용서 한은 총재는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은행에 전화했으나, 그날은 마침 토요일이어서 은행 직원은 일찍 퇴근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미군표 구매를 중지하라는 뜻을 전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은 직원들은 구 총재의 뜻과는 달리 이미 미군표를 구입하여 한은 도쿄지점 직원 편으로 일본에 보냈다. 그런데 이 직원은 다행히(?) 나카사키현 사세보시에서 일본 세관에 적발되어 노스웨스트 항공 직원들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다.

이후 한은을 찾아온 무초 미국 대사에게 구 총재는 사건의 경위를 그대로 밝히고 다행히 노스웨스트 항공에 전달이 안 되고 일찍 발견된 것이 다행이었노라고 양해를 구했다.

이 보고에 대해 이 대통령도 덤덤했고 미 측도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아 조용히 일은 마무리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또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정부는 매주 대통령 주재 하에 기관장회의를 열고, 전황을 살피는 한편 국정을 논의했는데, 이 회의에는 미국측 경제조정관도 참석했다. 그런데 회의가 열리던 당시 미국측 대표 킨니가 대통령이 듣는 앞에서 환율 인상을 강력히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킨니 대표는 곧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명을 받아둔 상태에서 출국에 앞서 강력히 환율 인상의 시급성을 강경하게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는 이 대통령에게 환율인상을 말하는 것은 ‘터부’로 되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킨니의 이야기를 들은 이 대통령의 표정은 곧바로 달라지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최순주 재무부 장관에게 물었다.

“최 장관은 어떻게 생각하시요?”

“대통령 각하, 환율을 올려야 합니다. 환율을 올리지 않으면 은행이 문을 닫게 됩니다. 신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대통령은 다시 구 총재에게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환율을 안올리면 은행이 문을 닫게 되나?”

이에 구 총재는 “환율을 안올린다고 은행 문을 닫아야 될 일은 없습니다”라며 최 장관의 의견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이 대통령은 “그럼 그렇지!”라며, 영어로 “오늘은 대단히 불쾌해!”라는 한마디를 던지고는 문을 열고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장내는 침묵만이 감돌았고, 미측 대표들도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회의가 끝난 후 구 총재는 은행으로 돌아와서 최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최 장관에게 “환율인상 문제는 대통령에겐 ‘터부’라는 것을 몰랐느냐. 적당히 이야기 할 것이지 왜 나를 끌고 들어가서 환율인상을 안하면 은행 문을 닫게 된다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했느냐”고 나무랬다.

이 대통령은 ‘코드’가 맡지 않는 정부 관료들을 곧바로 경질했다. 특히 최 장관은 이 대통령이 가장 민감해해 하는 환율 문제를 언급함에 따라 옷을 벗을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회의가 열린 날은 토요일이어서인지 다행히 이날 최 장관의 파면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음날 정부 관료들은 칸니 대표의 환송을 위해 수영비행장에 모두 나갔다. 그러나 최 장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어떻게 된 것인지 걱정을 하고 있는 사이에 최 장관은 김유택 재무부 차관과 같이 뒤늦게 나타났고, 킨니 대표가 떠난 후 동래온천 쪽으로 사라졌다.

결국 월요일 아침 구 총재는 최 장관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최 장관은 구 총재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을 직접 만나 사표를 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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