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무역]전쟁속에 횡재한 기업인들, 한국 떠나 일본서 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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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2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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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동란기의 무역 세태(2)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6.25 전쟁을 치루는 동안 재계는 요행과 비운이 엇갈렸다.

전쟁터에서는 하루에도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죽어가고 전황은 혼미상태에 있었으며,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는 피난민들이 부두에 거적을 둘러치고 겨우 비와 이슬을 피하면서 하루하루 살기 위해 부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물자 결핍과 함께 치솟는 물가를 악용하여 5배, 10배로 남는 장사에 돈 아쉬운 줄을 모르는 수입상들도 들끓고 있었다.

특히 부산 부두에 적재되었던 수출품은 유엔군의 제거 명령으로 하여 네것 내것 할 것 없이 국외로 실어내가야 했었다. 그래서 이들 많은 물자들은 매매계약도 없이 가수출되어 일본의 보세창고로 옮겨져서 위탁판매형식으로 처분되었다. 이로 인해 1950년에는 수출액이 수입액의 약 5배나 많았다.

판로가 없어 길거리에 중석을 쌓아놓기까지 하고 때를 기다리던 업자는 시세가 오르면서 일약 거상으로 등장했다. 또한 품질이 낮아 판로에 애를 먹던 철광석을 가진 업자 또한 횡재를 하는 판국이었다.

수출품을 가진 무역업자들은 모두 행운을 쥐었다. 동란전 400달러하던 중석은 전쟁 발발 후 4000달러를 호가했고, 억지로 중석을 떠맡았던 대한물산은 이로 인해 거액을 벌었다. 저품위 철광석을 보유하고 있던 동아상사도 횡재를 했다.

해태 수출에 가담했던 업자들 또한 수배의 장사를 했다. 고청, 진유 ‘인고트’는 가장 인기있는 수출품이었다.

이와 같은 전무후무의 경기를 타게 된 무역업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쟁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도쿄 시내 번화가 빌딩에 사무실을 차리고 신형 세단차를 몰며 고급 요정을 드나들었다.

이에 정부는 이들 무역업자들을 국내로 불러들이기 위해 정부 인사를 일본으로 파견하여 설득시키기로 하고, 설득사로서 당시 송인상 재무부 이재국장과 이병호 상공부 차관을 일본으로 파견하였다.

설득사 일행이 하네다 공항에 내리자 도쿄에 체류 중이던 무역업자들은 곧장 아타미 온천장으로 이들을 앞세우고 차를 몰아 엄청난 영접을 했다. 설득사들은 어처구니 없는 무역업자들의 돈 씀씀이에 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송 국장은 그들에게 조국의 참상을 호소하는 한편 전쟁 통에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무역업자들이 물자공급의 사명을 다하여 줄 것을 당부했다.

송 국장의 당부가 힘을 발휘했던지 그 후 한 사람 두 사람 귀국하는 업자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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