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제 백 내려놓고 좀 쉬세요.” “아니다. 네가 잘하는 모습을 조금 더 보고싶구나.”
최운정(25·볼빅)은 미국LPGA투어에서 ‘늦깎이’로 우승한 기쁨을 누구보다 아버지와 함께 누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그가 미국으로 갈 때부터 지금까지 8년동안 골프백을 메며 뒷바라지해왔기 때문이다. 박세리 김미현 장정 신지애 최나연 전인지 등 많은 한국여자골퍼들의 뒤에는 ‘골프 대디’가 있었지만, 최운정의 아버지 최지연씨(56) 만큼이나 헌신적인 사례는 드물었다.
투어 데뷔 후 네 대회에서 연속 커트탈락 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데뷔 연도에 가장 좋은 성적은 20위였다.
이렇다할 특징이 없었던 최운정은 데뷔 4년째이던 2012년 6월 매뉴라이프 파이낸셜클래식에서 2위를 하며 ‘첼라 최’(Chella Choi)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승은 그를 비켜가곤 했다. 2013년 미즈노클래식, 2014년 호주여자오픈에서 우승 문턱까지 갔다가 2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최운정은 포기하지 않았다. 연습 많이 하기로 소문난 ‘독종’답게 스스로 다잡았다. 동계 훈련 때는 아침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두 손으로 다리를 들어야 할 정도로 땀을 흘렸다. 지난해 투어 31개 대회 중 한 대회를 빼고 30개 대회에 나간 것도 이같은 훈련의 결과다.
최운정은 붙임성있는 성격으로 인해 동료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미림, 제시카 코르다(미국), 우에하라 아야코(일본), 훌리에타 그라나다(파라과이) 등과 친하게 지낸다. 지난해에는 동료선수들이 선정하는 모범상 ‘윌리엄 앤 마우지 파웰’을 수상,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선수로 인정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경찰이었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혜화경찰서에 이르기까지 도미 직전 21년간 경찰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딸이 미국으로 갈 때 버젓한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그랬다. 그러고 8년째 딸의 골프백을 메고 있다. ‘딸이 첫 승을 하는 날이 캐디를 그만 두는 날’이라는 게 아버지의 다짐이었고 딸과의 약속이었다.
최운정은 지난해말 미국으로 떠나기 전 “아빠와 호흡을 맞출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잖아요. 제 꿈은 아빠와 첫 우승을 하는 거에요. 빨리 우승해서 아빠를 쉬게 해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마침내 부녀(父女)의 꿈은 이뤄졌다.
최지연씨는 “이 순간을 정말 기다려왔다. 딸에게 ‘우승도 중요하지만 골프를 즐겨라’고 말해왔는데 우승까지 하니 정말 행복하다.”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딸도 “믿어지지 않는다. 7년 세월동안 간직해온 꿈이 이뤄졌다. 이 우승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고 기뻐했다.
부녀는 그러나 약속과 달리 당분간 함께 있을 것같다. 앞으로 2주간 열릴 대회를 위해 호텔과 항공권을 예약해두었기 때문이다. 또 물색해둔 캐디도 없다. 최운정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아빠와 얘기한 후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첫 승 문턱을 넘은 딸이 2승, 3승을 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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