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국정원(국가정보원) 정국이 ‘무법지대’로 전락하고 있다. 국가 최고정보기관인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 도입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을 유린한 정황이 속속 포착된 데다, 이를 견제해야 할 정치권 역시 진상규명 과정에서 위헌적 행태를 보이면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법치는 간데없고 ‘초헌법적’인 구태만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무소불위’ 국정원, 국회 보고도 모르쇠
무법지대의 물꼬는 ‘국가정쟁(政爭)원’으로 돌변한 국정원이 텄다. 22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국정원의 헌법·법률 위반 의혹은 △해킹 프로그램 구입 시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 △국정원 집단성명(공무원 정치적 중립 위반) 등에서 잇따라 발발했다.
통비법 위반 논란의 핵심은 국정원이 2012년 이탈리아 소프트웨어업체 ‘해킹팀’의 리모트 컨트롤 시스템(RCS) 구매 과정에서 국회 등에 통보했는지 여부다.
통비법 제10조에는 ‘감청설비 제조·수입·판매·배포·소지·사용자의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인가 규정(다만 국가기관 제외)’, 동법 제10조의2에는 ‘정보수사기관의 감청설비 도입 시 국회 정보위원회에 통보하는 규정’이 각각 명시돼 있다.
관전 포인트는 소프트웨어인 해킹 프로그램이 통비법상 감청설비에 해당하느냐다. ‘RCS=통비법상 감청설비’일 경우 법률 위반, 아닐 경우 법적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법률해석 싸움이 불가피한 셈인데, 20년도 넘은 통비법을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맞느냐는 점에서 국정원과 여당이 이를 아전인수격으로 축소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정원과 이탈리아 해킹팀 사이에 ‘나나테크’라는 거래 중개인이 끼어있는 점도 논란거리다. 국정원은 감청설비의 수입 시 미래부 장관의 인가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거래 중개인인 ‘나나테크’의 사정은 다르다. 야권이 국정원 해킹 의혹을 총체적 헌법·법률 유린으로 규정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정원 ‘집단행동’ vs 野 ‘국정원 정보공개’
국정원 직원의 집단성명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을 담당한 임모(45)씨의 자살을 놓고 온갖 의혹이 일자, 이례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집단 행위의 금지를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기에 임씨가 운전한 차와 시신이 발견된 차의 번호판 색이 다르다는 주장도 제기, 경찰의 수사은폐 의혹까지 덮쳤다. 전병헌 새정치연합 의원은 이날 “(임씨의) 마티즈 승용차의 번호판은 초록색인 반면, 경찰이 언론에 배포한 CCTV 사진의 번호판은 흰색”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즉각 “빛 반사 각도에 따른 착시현상”이라고 해명했으나,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글씨 색깔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라고 반박했다.
법률 위반 논란은 비단 국정원만이 문제가 아니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장은 지난 21일 국정원이 구매·운용한 RCS의 모든 로그파일을 포함한 7개 분야 30개 자료를 국정원 및 SK텔레콤에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에선 “명백한 불법 행위”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당 한 관계자는 “국가기밀을 유출하겠다는 것이냐”라며 ‘초헌법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변호사인 이재교 세종대 교수(자유전공학부)도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국정원의 기밀 사항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부분적인 정보공개의 방법은 국회 정보위를 통해서 하는 것”이라며 “국가정보기관의 특수성을 무시한 접근은 국익에 상당한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보위의 합의를 통해 ‘현장조사→비공개 논의’ 절차를 대신 ‘묻지마식’ 정보공개 요구를 통해 1급 기밀인 국정원 정보의 비밀주의를 깨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새누리당도 NLL(북방한계선) 정국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주장한 바 있어 여야 간 정쟁이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