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재계가 후계 2세대로 넘어서면서 두드러졌던 점은 ‘1인 중심’의 집중 경영체제였다. 창업주가 회사를 키우면서 함께했던 형제·친족들을 분가시키는 방법으로 후계 경영인의 지배구조를 강화시킨 것은 수성을 위해서는 강력한 1인 권한체제가 유효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1인 오너체제가 대기업군을 육성하기에는 벅찬 시기가 됐다. 융합과 결합 등으로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업구조의 고도화와 시장의 판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단 한 번의 경영판단의 실수가 회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다. 회사를 이끄는 전문경영인들이 오너를 보완·극복하며 지배구조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에 오너 일가들이 함께 그룹을 이끌어가는 집단경영이 재계 3세, 4세 후계구도를 주도하는 흐름이 될 전망이다. 이재용 부회장 후계체제로의 전환이 사실상 마무리 된 ‘삼성그룹’에서 오너 집단경영체제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삼성그룹은 ‘뉴 삼성’의 그룹 지배구조체제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축으로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제일모직 경영전략담당 사장·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 이서현 제일모직 경영기획담당 사장(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사장) 등 3남매 집단 경영체제를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서 지난해 그룹 사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이들간 분리·독립을 전망했으나, 삼성은 오히려 오너 일가경영의 강화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집단체제로의 회귀는 고도화된 사업환경의 변화 속에 1인자 위주의 단독체제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선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솔루션 회사’로의 전환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작업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그 이상이 걸리는 중장기 계획의 일환이었다. 1996년 당시 삼성전자 디지털솔루션센터(DSC) 센터장을 맡고 있던 권희민 부사장(현 삼성전자 DMC연구소 융합 TF장 고문)은 삼성전자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10~20년 주기별로 변화하는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이 삼성전자에게는 세 번이 있었는데 D램과 박막액정화면(TFT-LCD),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이 그렇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든 기기들에 대한 연결성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이동·공간·사무실 등 사람이 사는 24시간 동안 접하는 모든 기기들을 생산하는 삼성이 이들을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경제적 가치를 높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연결(Connect)’의 개념은 ‘융합(Convergence)’로 발전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주도로 디바이스간 연결이 전자사업과 비전자사업 전 계열사가 각 사업부문을 하나의 주제로 융합한다는 것으로 확장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된다면 반도체, 휴대전화, TV, 백색사건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는 무의미하다. 이들 각 기기를 SW노하우와 결합시켜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 진정한 그룹 차원의 경쟁력이 된다.
솔루션 기업의 토대를 마련한 IBM은 기업을 지향한 솔루션에 집중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소비자를 지향하는 솔루션 업체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를 위해 삼성그룹은 일본 업체들의 ‘수직통합’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 삼성그룹은 차세대 먹거리로 다시 한번 ‘바이오’를 내세웠다. 여기서 말한 바이오 사업은 단순히 의약품을 만들고 의료기기를 만드는 차원의 좁은 의미가 아니다. 소비자에 초점을 맞춘 솔루션 기업으로서 삼성그룹이 인간의 24시간 동안 제공하고자 하는, 가장 인간과 밀접한 솔루션으로 건강, 이를 '바이오'로 내놓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TV, 컴퓨터, 디스플레이 등등 최고의 의료 정보와 서비스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하드웨어 플랫폼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메디슨은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삼성의료원에는 최고의 의료진이 일하고 있다. 삼성SDS는 원격진료 SW를 개발했으며,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제약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반도체 개발 나노기술은 바이오칩을 개발하는 데에도 응용될 수 있는데, 바이오칩을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플랫폼을 가진 기업은 삼성이라 불리는 이유다.
삼성에버랜드는 놀이동산만 있는 게 아니다. 삼성은 에버랜드를 조성하면서 1970년대부터 이미 동·식물 유전자 연구를 진행해왔다. 호암상을 제정해 매년 거액의 연구비를 바이오 분야 연구에 지원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수십년간 독일, 일본에 대항하며 굳이 적자를 감행하면서까지 카메라 사업을 유지한 이유는 광학기술에서 독립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쌓은 기술은 삼성이 초정밀 의료기기 개발을 하는 데 바탕이 되고 있다.
이밖에 삼성물산 건설사업과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중공업은 삼성이 개발한 모든 기술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공간, 집, 건물, 공장·플랜트 등을 만들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상선과 플랜트를 건조하면서 얻은 장기간 육지와 떨어져 바다에서 살아야 하는 인력들의 심리상태와 체력상태 데이터는 육지에서 장기간 가족과 이웃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노령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 간접적으로 활용된다. 패션사업은 건강과 IT 등과 결합할 수 있는 플랫폼이며, 호텔과 골프장, 에버랜드 운영 노하우도 융합사업에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자산이다.
더불어 삼성화재와 삼성생명 등의 보험·금융서비스는 고객들이 보다 낮은 건강관리 비용부담으로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그렸던 삼성의 미래상은 더 이상 새로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다면 계열사간 역량을 조합해 세상에 없었던 가치를 창조하는 삼성이 되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융합과 복합의 사업은 ‘전자만의 삼성’으로는 불가능하다. 현 사업구조개편이 비전자 계열사의 역량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유다. 이재용 부회장과 더불어 호탤과 건설, 중화학 등에서 강점을 키우고 있는 이부진 사장과, 패션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이서현 사장의 조합은 융합의 사업을 완성할 수 있는 완벽이 기대되는 ‘오너경영 포트폴리오’다.
3남매 오너 집단경영체제와 삼성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경영인 제도가 이상적으로 결합된다면 삼성그룹의 미래는 밝다. 재계는 이러한 삼성의 미래상이 완성될 수 있을지를 눈여겨보고 있으며, 성공적으로 안착될 경우 각 그룹에서도 비슷한 방향으로 후계구도를 추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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