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워싱턴D.C의 교황청 대사관저 앞에서 미국 시민들과 첫 대면을 했다. 길을 뒤덮은 수많은 인파에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뒤 백악관으로 향하는 차에 오르기 전 10여 분간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한 남성이 자신의 볼과 이마에 입맞춤하도록 허용하는가 하면 몇몇 젊은이들과 셀카를 찍기 등 대중적인 행보를 보였다.
◆ 교황 "나는 이민자 가정의 아들" …불법체류 가정 어린이의 편지 받기도
이날 교황은 오전 9시 30분께 백악관에 도착해 오바마 대통령과 회동을 가졌다. 그리고 백악관 남쪽 마당에서 환영객 1만5천여 명이 지켜보는 영어로 미국에서의 첫 연설을 시작했다.
교황의 파격 행보는 연설에서도 이어졌다.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 특히 민주당과 공화당이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는 문제인 이민문제와 기후변화 대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교황은 먼저 자신을 "이민자 가정의 아들이다"라고 소개하고 "미국은 주로 그런 가정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이며 나 자신 역시 미국의 형제로서 여기에 왔다"며 "나는 이런 만남과 대화의 날을 고대해왔으며 미국인의 많은 희망과 꿈을 듣고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은 "교황의 이민자 발언은 수많은 히스패닉을 향한 경의이지만 동시에 반이민 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등 공화당 경선 후보들을 겨냥한 은근한 비판"이라고 평가했다.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 회동 뒤 벌인 퍼레이드에서 5살 소녀로부터 이민 관련 메시지가 담긴 편지를 받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 거주 소피 크루즈로 알려진 이 소녀는 애초 교황에 접근하려다 경호원의 제지를 받았으나, 교황은 다시 아이를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
교황에게 축복은 받은 소피는 편지와 노란 티셔츠를 교황에게 전했다. WP 등 미국 현지 외신 등에 따르면 소피크루즈의 멕시코 출신의 불법체류자 부모를 둔 '앵커 베이비(anchor baby)'이며, 이 어린이는 편지에 이민자 현실 개선을 위한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 기후변화에 대한 강력한 지지 표명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책 중 하나인 기후변화에 정책에 대해서도 분명한 의견을 밝혔다.
교황은 백악관에서 가졌던 첫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대기오염을 줄이자는 제안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용기 있는 일이다"라고 말하면서 "기후 변화 싸움은 매우 긴급한 문제이며 더 이상 미래 세대에 넘길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의 '공통의 집'을 보호하는 데 있어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살고 있다"며 "우리는 지속가능하고 완전한 발전을 가져올 필요한 변화를 만들 시간이 아직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에서 다소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직설적인 언급은 정치권에도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발언의 무게는 적지 않다. 이에 의회전문매체인 '더 힐'은 "교황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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