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양성모 기자 = 올해 물가상승률이 1%도 안 될 거라고 한다. 과거에는 고물가를 걱정했는데 요즘은 저물가를 걱정한다. 물가가 낮으면 좋은 거 아닌가? 일반적으로 저물가는 좋다. 하지만 경제 체력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낮으면 문제가 된다. 사람의 저혈압도 혈액순환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서 좋지 않은 것처럼, 너무 낮은 물가상승률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게 되어 바람직하지 않다. 해방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해마다 물가가 10%안팎으로 올라서 고물가(인플레)를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저물가 걱정은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요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동월대비 0%대를 기록하는 와중에 전세가격 상승률은 10%를 넘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실거래가격을 기준으로 전세 가격은 지난 7월에 11.9%, 8월에 12.1%, 9월에 12.2% 올랐다. 이처럼 전세가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크게 초과하면서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전세가격의 빠른 상승에 따라 전세자금대출도 지난 5년 사이 크게 증가했다. 시중 6대 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10년말 2조 281억 원이었으나, 2015년8월말 18조 4,925억 원으로 9.1배나 많아졌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전세 가격만 빠르게 상승하고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크게 증가한 것은 건전한 경제발전의 관점에서 그리고 서민생활의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전혀 바람직스럽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을까? 먼저 가격을 좌우하는 수요와 공급차원에서 분석해보자.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집 주인 입장에서는 전세금을 받아서 은행에 넣어 놓는 것보다 월세(현금)를 받는 게 훨씬 유리하다. 그러다 보니 전세 물량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전체 가구 중 월세 등 임대소득이 있는 가구는 2010년 131만 가구에서 2014년에는 136만 가구로 약 5만 가구 증가했다. 그 중에서 50대 이상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2010년 98만 가구에서 2014년 108만 가구로 빠르게 증가했다. 그리고 인구 감소와 저성장의 지속으로 향후 주택가격이 오른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주택을 구매하기 보다는 임대를 선호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2010년 국내 가구의 83.7%가 ‘내 집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반면, 2014년에는 79.1%로 4.6%p 감소했다.
이런 전세가격 상승이 내년이라고 잠잠해질까? 전세난은 좀 풀릴 것인가? 답변은 부정적이다. 최근 3년째 지속 중인 전세난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3년 간 평균 전세 가격 상승률은 5%의 높은 수준이 지속되는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평균 2%정도에 불과하다. 이론적으로 전세 가격은 매매 가격을 추월할 수 있다. 주택관련 세금이나 유지보수의 부담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전세 세입자 입장에서는 매매 가격보다 더 비싼 돈을 지불할 용의도 있다. 최근 뉴스를 보면 집값보다 더 비싼 전세가 출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론이 현실로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기형적인 전세 제도가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변 역시 부정적이다. 전세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한 주택임대제도이다. 조선시대서울을 중심으로 시작된 전세는 주택, 토지, 귀중품 등을 맡기고 돈을 빌려 썼던 ‘전당(典當)’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제도권 주택금융이 미흡했던 시기에 주택을 담보로 하는 사금융 기법의 하나로서 기능했다. 또한, 1960~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주택이 부족한 시기에 전세는 민간이 제공하는 주택임대 서비스로서 정부의 역할을 대신했으며, 서민들이 매입 가격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 서비스를 확보하도록 도와줬으며, 내집마련을 위한 강제저축의 기능을 하는 등 긍정적 효과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전세의 수명이 다한 것 같다. 조만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저금리가 지속될 수밖에 없고 인구는 계속 줄어들면서 집값도 안정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전세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같은 이유에서, 전세 물량은 줄어들고 전세 가격은 올라가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해가 질 때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을 드리우는 것처럼, 전세 제도가 사라지기까지의 과도기 동안에 전세가격 상승이라는 아픈 상처를 남기고 가는 것인가?
이런 과도기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선진국 대비 낮은 공공임대 비율을 높이는 등 공공임대 주택의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전문화된 기업형 임대사업자의 육성을 통해 임대서비스를 전문화하고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법인에게도 주택을 분양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여, 국민연금, LH공사, 지방공기업, 민간 대기업 등이 임대사업에 적극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전세의 월세화 등 임대차제도의 구조 변화에 대응하여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등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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