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성준 기자 = 지난 9월 대법원에서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요구 범위를 확대 판결한 이후, 이를 적용한 첫 이혼 사례가 나왔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민유숙 수석부장판사)는 남편 A씨가 부인을 상대로 낸 이혼 소송에서 A씨의 청구를 기각한 1심을 파기하고 이들의 이혼을 허용했다고 1일 밝혔다.
45년 전 결혼한 두 사람은 A씨의 폭력적 행위로 1980년 협의 이혼했다. 이들은 3년 뒤 다시 혼인 신고를 했으나 A씨는 바로 다른 여성과 동거했다. 동거를 청산한 A씨는 또 다른 여성과 동거를 시작해 혼외자를 낳았다. 동거녀의 출산 직후 A씨는 이혼 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그때부터 25년간 사실상 중혼 상태로 산 A씨는 장남 결혼식 때 부인과 한 차례 만났을 뿐 이후 만남도 연락도 없었다.
2013년 A씨는 다시 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고 1심은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A씨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2심은 '혼인생활 파탄의 책임이 이혼 청구를 기각할 정도로 남지 않았으면 예외적으로 이혼을 허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부부로서의 혼인생활이 이미 파탄에 이른 만큼 두 사람은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25년간 별거하면서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사라졌고, 남편의 혼인파탄 책임도 이젠 경중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고 봤다. 또 남편이 그간 자녀들에게 수 억원의 경제적 지원을 해왔으며, 부인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 출출이혼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인이 이혼을 원치 않고 있지만 이는 실체를 상실한 외형상의 법률혼 관계만을 형식적으로 계속 유지하는 것"이라며 "혼인생활을 계속하라 강제하는 것은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말했다.
올해 9월1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3명 중 7명의 찬성으로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현재의 유책주의를 유지했다.
그러나 혼인파탄의 책임을 상쇄할 만큼 상대방과 자녀에게 보호·배려를 한 경우와 세월이 흘러 파탄 책임을 엄밀히 따지는 게 무의미한 경우는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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