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노란 노을로 지는 저녁
헤어진 기억 따라 막걸리 집에 갔다
막걸리집 주인 여자의 젊은 한철
양은 막걸리 잔처럼 찌그러진
철 지난 이별 얘기를 듣다 또
취해서 나선 골목은 가을 가로등
밤 늦은 은행잎의 낙화에 발목이 잠겨
집으로 가는 길은 무릎 시린 귀가
가슴마저 저려오기 전에
그래 저기 과일가게에서 홍시라도 사야지
빨갛게 익어 애인 같은 홍시를 사다
붉은 사과도 노란 귤도 모두
떠나는 원색의 행렬
이렇게 또 한철 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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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리는 은행잎 낙엽들로 노랑물이 들고 있다. 살다보니 가을이었고, 더 살다보니 가을이 또 저물고 있다. 이 가을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별주라도 한 잔 할 생각으로 막걸리 집을 찾았다. 거기도 가을이다. 저물어 가는 주인 여자의 젊음도 양은 막걸리 잔처럼 찌그러진 가을이다. 그 여자의 한철 이별 얘기를 듣다 취해서 나선 거리는 은행잎들로 발목이 잠긴다. 가뭇없는 나의 이별을 기억하며 골목을 돌 때 본 과일가게. 그 앞에 진열된 과일들은 유난히 붉고 노랗다. 저물어 가는 가을 한철은 그렇게 아름다운 원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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