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격자’를 지나 ‘남쪽으로 튀어’, ‘완득이’, ‘검은 사제들’로 이어지는 그의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연기했던 인물들은 망설이지 않았고, 돌아가지 않았다. 그 꼿꼿한 뒷모습은 어딘지 실제 김윤석과도 멀지 않은 인상이었다.
위험에 직면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미스터리한 사건에 맞서는 두 사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검은 사제들’(감독 장재현·영화사 집·제공 배급 CJ엔터테인먼트) 개봉을 앞둔 11월2일 아주경제는 김신부 역을 맡은 김윤석을 만났다.
“이 영화에서 감정적 이입을 해나가는 건 최부제(강동원 분)겠죠. 신학생에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친구의 성장을 그리고 있기도 하고요. 저는 그 옆에서 이 친구의 성장을 거드는 사람이고요.”
영화는 두 사제가 악령을 쫓기 위해 구마예식(사령을 쫓아내는 가톨릭 예식)을 치른다는 판타지적 요소를 다룬다. 한국 관객에게 사제들과 엑소시즘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판타지적인 배경은 너무도 현실적인 캐릭터와 대사를 만나 한국적인 정서를 담게 됐다.
“극 중 최부제에게 ‘돼지는 밖에다 묶어놔라’라거나 ‘너희 집이 어디니. 땅값이 많이 올랐겠네’하는 대사들은 너무도 현실적인 것들이잖아요. 이런 대사들이나 인물들의 행동들은 시나리오의 힘이 됐어요. 그게 아니었더라면 할리우드 삼류 영화처럼 느껴졌을 텐데(웃음). 이런 점들이 마음에 들었고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았죠.”
힘 있는 전개와 담백한 대사는 ‘검은 사제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김윤석 역시 이에 대해 깊이 수긍하며 “이번 영화는 그저 시나리오에 충실하기만 하면 됐다”고 말했다. 만족감이 깃든 얼굴은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자 자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사의 변형 정도는 있을 수 있겠죠. 상황에 따라서 변형하는 것은 언제나 해왔던 거고, 제 연기 스타일에 맞게끔 하는 거니까요.”
작품이 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너머의 해석을 담는 것은 오롯이 김윤석의 몫이었다. 그는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김신부에 대해 “독립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을 해온 사람들과 대입하면 딱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어떤 보상도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일을 위해서 싸우잖아요. ‘검은 사제들’ 속 김신부와 최부제는 우리 역사와도 닮아있어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음지에서 노력하고 있는 인물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와 닿은 부분이에요. 비주류인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이게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종교적 이야기가 아닌 비주류인 사람들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는 김윤석은 아웃사이더인 김신부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발견하게 된다. “누구나 하나쯤 가졌다”는 트라우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김윤석 역시 그것에 시달리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저도 물론 트라우마가 있죠. 아마 외로움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우리가 섞여 살고 있지만 결국 혼자라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생을 마감할 때도 혼자고요. 하루하루 도 닦는 기분이 들어요. 순서가 오면 내가 떠나야 하고, 트라우마 속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고요.”
극 중 세 명의 인물은 모두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 트라우마가 가장 극대화되는 것은 바로 구마예식 신. 밀폐된 옥탑방에서 세 인물이 주고받는 신경전인 보는 이들까지 숨 막히게 하는 치열함을 가졌다.
“구마예식 신은 정말 힘들었어요. 차라리 도망가고 잡고 하는 액션이 있다면 피가 끓고 땀도 나고 좋을 텐데(웃음). 이건 가만히 서서 싸우는 거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저도 힘든데 누워서 연기한 (박)소담이는 어땠겠어요.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진지하고 무거운 소재를 담았지만, 현장 분위기는 유쾌했다. “후배가 아닌 동료들과 연기했다”는 그는 영화 ‘전우치’ 이후 6년 만에 만난 강동원에 대해 “더 성숙해졌고 리얼해졌다”고 평가했다.
“동원이와는 연기 합이 잘 맞았어요. 티격태격 주고받는 대사나 리얼리티적인 요소들이 좋았어요. 일단 정말 편한 상대고요(웃음).”
“배우기 때문에 그런 주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고 단련되어 있다”는 김윤석은 이번 작품을 통해 더욱 여유로워졌고, 깊어졌다고 설명했다.
“원래 제가 (작품을) 1년에 한 편 정도 하는데 올해 개봉이 겹쳤어요. 이제 컨디션 조절도 할 겸 조금 쉬려고요. 집중할 시간도 얻을 겸 다시 패턴을 유지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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