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해운업계 불황이 세계 최대 해운선사의 대규모 긴축조정 움직임으로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경기둔화속에서도 높은 성장세로 선박 발주량을 늘려온 해운선사마저 손들게 만든 불황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경고음이 되고 있다.
◆ 세계 1위의 ‘기침’...해운‧조선업계 ‘감기’ 전조되나
AP 묄러 머스크 산하의 해운그룹 머스크라인은 4일(현지시간) 컨테이너 화물운반에 종사하는 지상인력 4000명을 줄이고,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박인 '트리플-E' 6척과 운반선 8척 등 일부 선박의 구매계획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머스크라인이 경영악화에 올해 연간 순이익 예상치를 22억 달러에서 27% 줄어든 16억 달러로 낮춰 잡은 이후 나온 것이다.
머스크라인은 10월 기준 선복량(적재능력) 301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덴마크 국적 해운선사다. 지난해 50%대의 이익 성장률을 달성하고, 총 150억 달러의 선박 투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머스크라인의 갑작스런 긴축조정에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1차적으로 심각한 불황에서도 무리하게 몸집을 불려온데 따른 결과라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대 해운선사마저 피하지 못한 해운업계 불황의 심각성에 주목하고 있다.
해운선사의 구조조정 움직임은 결국 선박발주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업계의 시름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머스크가 구입을 포기한 ‘트리플-E’ 초대형 선박은 한척당 1억5000만 달러를 호가하는 선박으로, 몇 척만 수주해도 기타 선박 수주량 감소세를 상쇄할 정도의 값어치를 지닌다.
이 선박의 제작사는 우리나라 대우조선해양으로, 지난 6월 대우조선해양은 머스크측과 1만9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1척 수주 계약 체결하면서 동일 사양의 6척 선박을 추가 계약할 수 있다는 옵션을 부여받았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머스크측은 상기 옵션 6척 선박 대한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것일 뿐, 기존에 계약 완료된 11척 중 6척을 취소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어서 대우조선해양 전체 실적에도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머스크마저 경영악화에 초대형선박 발주를 포기하면서 연쇄적인 선박 취소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도 제기되고 있다.
◆ 글로벌 불황타개 노력에도 움직임 없는 한국
해운업계에서는 인원 및 사업 규모 축소, 기업간 합병, 선박과 항로 등 인프라 네트워킹 동맹 등으로 돌파구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인원 및 사업규모를 축소하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구조조정 방안이다. 우리나라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수년간 수천억원 규모의 적자가 쌓이자, 지난해부터 자산매각 등을 통해 약 5조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한진해운은 한진그룹 계열사 지분 전량 매각을 시작으로 벌크전용선, 국내외 터미널 지분 등을 팔았고, 현대상선도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사업을 1조원대에 팔고 컨테이너와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자사주 등을 매각했다.
이같은 자구책에도 재구구조 개선에 어려움을 겪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을 통해 해운업계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해운업계에서는 이미 기업합병과 동맹결성을 통한 영향력 확대에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덩치를 키워 세계 해운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목표다.
최근 중국에서는 코스코와 차이나시핑그룹의 합병을 통한 공룡 해운기업의 탄생이 예고했다. 지난해에는 독일 최대 컨테이너 선사 하팍로이드와 칠레의 컴패니아 서드 아메리카나(CSAV)사가 합병을 통해 세계 4위 선사로 부상했다.
글로벌 해운선사들은 또 해운노선, 선박, 인프라 공유를 통해 해운 네트워킹 동맹을 맺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동맹으로 화주들이 선호하는 정기적 노선 서비스 구축, 유동적인 운임 조정담합 등이 가능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머스크 또한 세계 2‧3위의 스위스 국적선사 MSC와 프랑스 국적선사 CMA-CGM 그룹의 '삼각 동맹'을 시도하려 했으나, 시장 지배력이 너무 커질 수 있다는 중국의 반대로 스위스 MSC와의 합작만 이뤄냈다.
이 같은 글로벌 해운선사의 움직임이 우려되는 것은 이들이 최근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잇따라 발주하는 등으로 시장 지배력을 넓히고 있어서다. 국내 선사는 지금 당장 대형선 없이 버티고 있지만, 2017년 이후에는 이같은 초대형 해운동맹에서 완전히 소외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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