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캅은 지난 10일 오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경기 준비시부터 이미 어깨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며 “서울에서의 경기를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썼지만 훈련을 쉬지 않아 부상이 악화됐다”며 수술이 불가피함을 알렸다.
이어 은퇴 의사를 밝혔다.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다”라고 서두를 열더니 “은퇴가 최종 결정이다”라고 쓰며 “내가 격투기 세계에 어느 정도 족적을 남겼다고 믿는다”고 지난 격투 인생을 돌아보기까지 했다.
크로캅이 은퇴 의사를 결정함에 따라 종합 격투기 헤비급은 하나의 큰 별을 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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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이 점점 인기를 잃어 갈 무렵 프라이드에 진출 한 그는 종합 격투기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2001년 프라이드 데뷔 이후 후지타 카즈유키, 나카다 유지, 사쿠라바 카즈시 같은 일본인 강자들을 KO로 가볍게 제압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어 2003년 프라이드 헤비급 강자로 군림하던 ‘텍사스의 미친 말’ 히스헤링과 ‘러시안 훅’ 이고르 보브찬친을 각각 강력한 미들킥과 하이킥으로 KO시키며 헤비급 탄 컨텐터로 부상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와 함께 프라이드 최강자로 군림하던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를 맞아 그라운드 플레이에 약점을 드러낸 후 암바로 패했고 또 이듬해 케빈 랜들맨의 강력한 태클에 이은 파운딩에 TKO패 당하며 ‘반쪽짜리 선수’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효도르의 동생 에멜리아넨코 알렉산더를 하이킥 KO로 꺾으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강력한 테이크 다운 디펜스를 바탕으로 대표적인 그래플러 조쉬 바넷을 꺾었고, 자신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줬던 랜들맨을 1라운드 41초만에 길로틴 초크로 잠재우며 약점을 완벽히 극복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전 UFC챔피언이자 극강의 레슬러 마크 콜먼까지 꺾은 크로캅은 당시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 ‘60억분의 1의 사나이’ 효도르에게 도전하게 된다.
효도르와 크로캅이 맞붙은 2005년 8월28일의 경기는 격투기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회자된다. 화끈한 KO는 나오지 않았지만 의외로 초반 타격을 고수한 효도르의 전략과 이후 이어진 그라운드 싸움을 견뎌낸 크로캅의 방어력 등을 통해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줬다는 평이 많았다. 비록 크로캅은 이 경기에서 3라운드 판정패했지만 끝났지만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선수중 한명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어 2006년 열린 프라이드 무차별급 그랑프리에서 반더레이 실바, 조쉬 바넷 등을 꺾으며 드디어 챔피언 벨트를 차게 된다.
하지만 이후 내리막세가 시작됐다. 2007년 프라이드의 몰락 이후 UFC행을 선택한 크로캅은 가브리엘 곤자가에게 충격의 하이킥 KO를 당했고, 이어 킥콩고에게도 판정패 당하며 노쇠화가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효도르는 크로캅이 지나치게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며 우려하기도 했는데 크로캅은 2001년 프라이드에서 데뷔한 후 매해 3경기 이상을 꼬박 치렀고, 2004년에는 무려 8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몸이 충격을 흡수하는 종합 격투기의 특성상 무리가 오지 않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프라이드의 작은 링과 다르게 넓은 UFC의 옥타곤에서 크로캅의 느려진 스텝으로 상대를 압박하기는 힘들어졌다. 또 테이크 다운 디펜스만 하면 버틸 수 있었던 링과는 달리 옥타곤의 벽은 도망갈 곳 없이 사이드에 몰려 체력을 소진당하고 상대의 잔 펀치에 충격이 누적되는 환경이었다.
크로캅은 2009년 주니어 도스 산토스에게 완패하며 더 이상 UFC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이어 앤소니 페로쉬, 패트릭 배리와 같은 약체들에게 승리하긴 했지만 다시 프랑크 미어, 브랜든 샤웁, 로이넬슨에게 내리 3연패하며 결국 격투기를 떠났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의 우려속에 지난 4월11일 UFC에서 자신에게 첫 패배를 안겼던 곤자가와의 리벤지 매치를 통해 복귀했다. 그는 부진할 때도 스탠딩을 고집하는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해왔지만 이 경기에서는 달랐다. 가브리엘 곤자가에게 다운을 얻어 낸 후 그라운드에서 강력한 앨보우 공격으로 상대의 안면을 피투성이로 만들며 승리를 거뒀다.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크로캅은 과거 자신에게 패배를 안겼던 로이넬슨, 프랑크 미어 등과 모두 리벤지를 가질 것이고 예고해 팬들을 열광케 했다. 하지만 결국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그는 20년에 가까운 격투기 경력 동안 76경기(54승19패3무승부)를 치르면서도 뒷걸음치며 도망가거나 시간을 끌기 보다는 늘 전진하며 펀치와 킥을 날리는 스타일을 고수했다. 완성형의 효도르와 주짓수의 노게이라와 함께 스탠딩 타격을 상징하는 종합격투기계의 하나의 아이콘이었고 늘 최선을 다해 상대와 부딪히는 승부사였다.
크로캅은 “나를 지지해준 모든 이들 고맙다”며 “그러나 내 아름다웠던 모습만 기억해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그리 말하지 않았어도 모두가 그러 할 것이다. 그가 지나온 격투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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