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야오방과 달리 자오쯔양 복권은 당분간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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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2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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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톈안먼사태 당시 학생들을 만나 확성기를 손에 들고 발언하고 있는 자오쯔양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사진=바이두]


[연관기사][특파원스페셜]후진타오는 못했던 후야오방 복권, 시진핑은 달랐다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후야오방(胡耀邦, 1915∼1989) 전 총서기에 대한 복권은 이뤄졌지만, 자오쯔양(趙紫陽, 1919∼2005) 전 총서기에 대한 복권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오쯔양은 후야오방에 이어 1987년 중공 총서기에 올라 개혁작업을 이어나갔던 인물이다. 1989년 그의 전임 총서기였던 후야오방이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는 집회가 벌어졌다. 이 집회는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로 번져갔다. 공산당 원로들은 조기진압을 주문했지만 자오쯔양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생들의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중국 공산당은 결국 자오쯔양을 실각시키고 군을 동원해 시위대를 무력진압한다. 중국 현대사의 비극인 톈안먼 사태다.

후야오방은 톈안먼사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자오쯔양은 직접적인 당사자이다. 중국은 톈안먼사태에 대해 1980년대말 중국에서 발생한 정치적 풍파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1당독재와 중국식 사회주의 고수를 천명하고 있는 현 지도부 역시 톈안먼사태 당시의 정치개혁 요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때문에 자오쯔양에 대한 태도는 싸늘하기 그지없다.

실각 후 15년간 가택연금을 당한 자오 전 서기는 2005년 1월 17일 사망했다. 중국당국은 신화통신을 통해 "당과 인민사업에 유익한 공헌을 했다. 1989년 정치적 풍파 속에 엄중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평가한 이래 단 한 번도 자오쯔양을 공개 거론한 적이 없다.

자오쯔양의 유골은 사망후 10년째 안장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12월 세상을 떠난 그 부인 량보치(梁伯琪) 여사의 유골 역시 베이징(北京) 왕푸징(王府井) 부근 푸창후퉁(富强胡同) 골목에 있는 자택에 보관 중이다. 만약 자오쯔양의 묘지가 조성되면 참배객들이 몰릴까 염려되어 중국 당국이 묘지를 제공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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