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집권 3년, 시진핑 군부장악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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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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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군부 핵심에 발을 내디딘 것은 2010년 10월 공산당 17기중앙위원회 5차전체회의(17기5중전회)에서 군사위 부주석에 임명되면서부터였다. 2007년 국가부주석 상무위원에 올라서며 차기 국가주석을 예약한 그였지만 2010년 말이 되어서야 군부 요직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만큼 군부의 벽은 높았다.

시진핑은 군사위 부주석에 오른지 3개월 후인 2011년 1월 오랜 친구인 류위안(劉源) 상장(한국의 대장격)을 총후근부 정치위원으로 끌어올렸다. 군수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총후근부는 당시 군부내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되던 곳. 류위안은 총후근부내 반부패작업을 진행했으며, 2012년 2월 당시 총후근부 부부장이었던 구쥔산(谷俊山)을 면직시켰다. 이는 군부내 반부패활동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반부패, 군부에서 가장 강도높았다

2012년 11월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오른 시진핑 주석은 군부는 물론 사회전체에 반부패운동을 전개했다. 저우융캉(周永康), 링지화(令計畫) 등 무수한 정계 거물들이 낙마했다.

하지만 반부패운동 바람이 가장 거센 곳은 군부였다. 지난해 3월15일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군사위 부주석이 낙마했으며, 지난 4월9일에는 궈보슝(郭伯雄) 전 군사위 부주석마저 부패혐의로 못을 벗었다. 궈보슝은 2002년 11월에, 쉬차이허우는 2004년 10월에 부주석에 오른 인물로, 둘 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부주석에 임명했다. 이들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재임시절 군부 2위와 3위로, 전체 군부를 좌지우지했다. 지난 4월 기준 집계로 시진핑 등극 이후 장차관급 낙마인사 102명 중 무려 33명이 군부인사였다.

집권후 군부내 정풍운동을 통해 자신의 군부내 영향력을 급속히 확장시키던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1월 전군지휘관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장소로 시 주석은 푸젠(福建)성 구톈(古田)을 지목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11월 구톈에서 개최된 전군지휘관회의에 참석해 전시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신화통신]



◆구톈회의 이전과 이후

86년전인 1929년 12월에 열렸던 구톈회의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은 '당의 군대지휘' 원칙을 세웠다. 당시 마오쩌둥은 홍4군 공산당 서기로 당의 지도자였으며, 홍4군 사령관은 주더(朱德)였다. 마오쩌둥과 주더는 협의를 통해 함께 군권을 행사했었다. 하지만 구톈회의에서 원칙이 정해진 후, 마오쩌둥은 공산당 서기의 신분으로 홍4군의 군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했으며, 이 원칙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시주석이 지휘관 회의장소로 구톈을 택한 의미는 명확했다. 공산당의 군대지휘 원칙을 더욱 명확히 복귀시키겠다는 것. 이는 시 주석의 군부장악과 일맥상통한다. 

마오쩌둥, 덩샤오핑(鄧小平) 집권기에는 본인들이 인민해방군 설립 주축이자 대원로였던 만큼 '당의 군대지휘' 원칙은 단 한순간도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장쩌민 전 주석과 후진타오 전 주석은 혁명원로도 아니며, 군출신인사가 아닌 관료출신이었기에, 군에 대한 장악력이 느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 집권기에는 군부의 자율성이 나날이 커져만 갔다.

◆”시대는 군권 집중 요구”

경제적인 굴기를 바탕으로,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열도)와 남중국해에서 미국,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중국은 군사전략을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인민해방군의 신속한 전투능력 제고가 급선무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확립을 위한 조직의 슬림화 등 구조조정도 요구된다. 시 주석으로서는 군부에 흩어져있던 권력을 자신으로 집중시켜, 강한 개혁을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구톈회의에서 "당의 군대에 대한 절대적 영도는 '강군의 혼'"이라면서 '군의 혼'(군인정신) 강화는 그 어떤 시기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면서 당에 대한 군의 절대 충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강한 군대, 싸워서 이기는 군대 건설에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군부의 방향을 재확인했다.
 

 

◆2015년 군부개혁 급물살

지난해까지 군부내 입지를 탄탄히 다졌던 시주석은 구톈회의 이후 군부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우선 지난 3월 쉬차이허우가 사망한 이후 4월에 궈보슝을 부패혐의로 낙마시키며 군부 반부패작업의 고삐를 당겼다. 지난 5월26일에는 국방백서를 발표하면서 "국가주권과 안전, 국가해양권익 수호를 강화하고 무장충돌과 돌발사건에 대한 준비(태세)를 강화할 것"이라며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군대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8월에는 10명을 대상으로 상장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2012년말 1명, 2013년 6명, 2014년 4명에 이어 대폭의 승진인사였다. 시 주석 집권시기 상장 승진자는 모두 21명으로 늘었다. 현역 상장 38명중 21명이 시 주석이 진급시킨 인사들인 셈. 9월3일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개최한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시 주석은 병력 30만명을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비대한 군부조직에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7대군구·4총부 구조조정안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된 중앙군사위원회 개혁공작회의에서는 더욱 강도높은 개혁안이 도출됐다. 7대군구(軍區)제를 폐지하고 전구(戰區)제를 도입하며, 전구와 군종(육군, 해군, 공군, 제2포병대)의 역할을 분리시키고, 연합작전치휘체제를 확립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총참모부, 총정치부, 총후근부, 총장비부 등 4총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군사위원회의로 권력을 집중시키는 방향도 제시됐다.

이같은 군부 개혁안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 전구제 전환과 4총부 약화는 장성급은 물론 영관급들의 인원감축으로 이어진다. 강한 군대, 이기는 군대를 건설하겠다는 비전이 명확하더라도, 군부개혁은 현실적으로는 첨예한 이익조정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군부 반발과 류위안의 퇴임

자연스레 군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중국인민해방군 국방대학의 쑨커자(孫科佳) 부교수는 해방군보 기고를 통해 "군 개혁이 여러 동료 군인들의 이익을 건드릴 것"이라며 "개혁이 적절히 다뤄지지 않으면 군은 물론 사회의 안정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 이는 군부내 보수파의 국방개혁에 대한 저항이 존재하며, 상당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또 시 주석의 군부 장악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임을 반영한다.

그리고 지난 16일 시 주석의 군부 최측근 인사인 류위안 총후근부 정치위원이 급작스레 퇴임했다. 군부 반부패작업에 공로가 큰 류위안은 인민해방군 기율위 서기로의 영전이 유력시되는 상황이었다. 류위안이 군부 기율위 서기로 이동한다면, 시 주석의 개혁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을 터. 하지만 류위안은 조용히 퇴직했다. 관영매체는 그의 퇴임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퇴임 4일 후 옛 동료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공개됐을 뿐이다. 이를 두고 시 주석이 군 개혁안 수용과 류위안 퇴임을 놓고 군부내 보수파들과 거래를 했다는 말들이 나온다.
 

지난 25일 시진핑 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위원들이 해방군보를 시찰하고 있다.[사진=신화통신]



◆해방군보 통한 여론전 드라이브

시 주석은 지난 25일 인민해방군 기관지인 해방군보를 시찰했다. 해방군보는 시주석 등극 이후 줄기차게 '당의 군사지휘'원칙과 강군육성을 제창해왔다. 시찰은 내년 1월1일 해방군보의 창간 60주년을 축하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시 주석은 두 명의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과 8명의 군사위 위원을 모두 대동하고 해방군보 사옥을 찾았으며, 사옥내 마련된 전시회를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매체 관계자들에게 "해방군보는 그 동안 당과 군의 방침을 정확히 보도했으며, 군부내 사기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치하했다.

이와 함께 시주석은 해방군보의 인터넷 웨이보(微博)를 통해 인민해방군에 새해 축하인사를 보냈다. 새해인사에서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부대, 민병부대원에 새해인사를 드리며 중국의 꿈 실현과 강군목표 실현에 더욱 공헌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당일 해방군보의 웨이보는 네티즌들의 방문이 폭주했다. 그야말로 시 주석이 해방군보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이고 힘을 실어준 것.

이처럼 시 주석이 해방군보를 파격 방문해 무게를 실어준 것은 향후 벌어질 군부내 여론전에서 해방군보가 선봉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부패의 명분과 군부개혁의 비전이 뚜렷한 만큼, 군부여론을 등에 업고 보수파들을 압박해나가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이 역시 시주석의 군부장악이 아직 완벽하지 못한 상태임을 반증한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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