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아이러니하다. 정부는 물가가 오르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는 데 서민들은 장보기가 겁난다고 말한다.
디플레이션(경제 전반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 우려될 정도의 저물가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서민들은 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되레 저물가 체감은 고사하고 치솟는 밥상물가와 주거비, 공공 서비스요금 등에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서민들은 호소한다.
이는 1965년 소비자물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것으로, 올해까지 적용되는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안정목표(2.5∼3.5%) 하단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8년 4.7%, 2010년 3.0%, 2011년 4.0% 등 고공 행진을 이어오다 2012년 2.2%를 기록한 이후 2013년과 지난해 1.3%에 머물렀다.
수치만으로 보면 불과 몇 년 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뚝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저물가 상황이 지속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지난달 채소, 과일, 어류 등 장바구니 물가와 직결된 제품 가격은 3.7% 오르는 등 전체 지수와 상당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10월 역시 0.9%의 상승률을 보여 저물가를 이어갔지만 양파가 91% 폭등하고 채소, 과일, 어류 등 신선식품물가는 3.7% 상승하는 등 밥상머리 물가는 '고물가'를 기록했다.
또한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거비와 공공서비스 요금도 상승 폭이 컸다.
11월 전세가격은 4.0% 올랐고 시내버스료(9.0%), 전철료(15.2%), 하수도료(14.4%) 등이 크게 뛰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낮지만, 서민들에겐 '고물가'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 대해 정부는 '평균의 함정'을 들어 통계물가·체감물가 간 괴리에 대해 설명했다.
소비자물가는 481개 품목을 대상으로 측정되지만, 개별 가구는 이 중 일부만을 소비한다.
지난달 기준으로 보면 휘발유(-14.9%), 경유(-19.5%) 등 자동차 연료 가격은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전철과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은 크게 올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은 물가 하락을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평균의 함정'이다.
또한 '평균의 함정'만으로 설명이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심리적 요인을 들었다.
통계상의 소비자물가는 구입 빈도를 고려하지 않고 산출되지만, 체감물가는 소비자들이 자주 사는 품목의 가격 변동에 영향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물가에서 비슷한 가중치가 부여되는 배춧값이 오르고 냉장고값은 내렸을 때 소비자들은 물가가 올랐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유경준 통계청장은 "통계청이 발표하는 물가지수와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 사이에 괴리가 있는 점을 감안, 올해 가계동향조사를 토대로 내년에 새로운 물가 품목을 추가하고 가중치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한 물가품목 및 가중치 변경 주기를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유 청장은 "모든 물가 품목을 개방해서 소비자 개인별로 많이 쓰는 항목 위주로 물가를 자동 계산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며 이른바 '나만의 물가지수' 개발 계획도 밝혔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