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2016년은 중국에 문화대혁명이 발발한지 50주년되는 해이자,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 주더(朱德) 등 중국혁명의 주역들이 사망한지 40년되는 해다. 탕산(唐山)대지진이 일어난지 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에 중국에서는 관련 행사들이 열리게 되며, 시대상황에 맞춰 각 행사들에 의미가 부여되게 된다. 공산당 역사를 그린 드라마와 영화들이 속속 개봉할 채비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특히 마오쩌둥 사망 40주년을 앞두고 중국대륙에 홍색바람이 한바탕 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중국의 주요 기념일을 살펴본다.
◆1월8일 저우언라이 사망 40주년
아직까지도 ‘영원한 총리’로 불리며 존경을 받고 있는 저우언라이가 1976년 1월8일 사망했다. 향년 78세였다. 중국공산당 창당과 인민해방군 창설을 주도한 그는 신중국 성립이후 사망할때까지 27년동안 총리를 역임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방중을 성사시키며 외교인생 클라이막스를 구가했던 그는 그 해 암에 걸렸다. 죽음을 예견한 저우언라이는 사망 1년전에 덩샤오핑(鄧小平)을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시켰다. 마오쩌둥을 설득한 끝에 사망 3일 전인 1월5일에는 덩샤오핑을 중공중앙 군사위 부주석, 국무원 제1부총리를 겸임토록 했다. 본인 사후를 대비해 덩샤오핑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는 만년에 마오쩌둥의 독주를 막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올 1월8일에는 저우언라이와 관련된 토론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중국 지도부의 추모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5월16일 문혁 발발 50주년
1966년 5월16일 열린 중국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는 마오쩌둥이 기초한 통지문을 통과시킨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명의의 이 통지는 ‘5·16 통지’로 불린다. 5·16 통지는 ▲정치국 상무위 산하에 문화혁명 소조구성 ▲새로운 좌파이론과 노선 방침 제시 ▲각급 당위원회의 문화영역 지도권 확보 ▲당정군 및 문화계의 자산계급 대표인물에 대한 공격 등을 지시했다.
이 날을 기해 ‘문화’로 겉포장된 무자비한 권력투쟁이 발발했으며, 이로 인해 마오쩌둥이 다시 모든 권력을 잡게 된다. 문화대혁명은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 종료된다. 문화대혁명은 중국에 여전히 크나큰 아픔이자 상처로 남아있다. 문혁발발 40주년이었던 2006년에 행사들은 조용히 치러졌다. 올해 역시 중국사회는 문혁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한 채 지나칠 것으로 보인다.
◆6월26일 국공내전 발발 70주년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은 1946년 1월10일에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5개월 후인 6월23일 국민당군이 정전협정을 파기하고 공산당 점령지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자, 6월26일 공산당은 대대적인 반격에 돌입했다. 이로 인해 국공내전이 발발한다. 국민당군은 병력과 장비면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점했지만, 소련으로부터 군사원조를 받은 공산당군은 반전의 기회를 잡는다.
공산군은 1948년 하반기 랴오선(遼瀋)전투를 통해 동북지방을 장악했고, 1949년 화이하이(淮海)전투와 핑진(平津)전투를 통해 화북지역을 석권했고, 이어 장강도하 전투에서마저 승리했다. 국공내전은 1950년 3월 28일 중국 대륙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국민당 병력이 철수함으로써 공산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 과정에 1949년 10월 1일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 선언됐다. 국공내전승리는 공산당의 자랑스런 역사인 만큼 올해 70주년에는 대대적인 행사들이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7월6일 주더 사망 40주년
1976년 7월6일 중국 인민해방군의 창시자인 주더가 사망했다. 향년 90세였으며 사망 당시 직책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었다. 1930년에 홍군총사령에 올랐고, 1931년 중화소비에트 군사위 주석에 올랐다. 1934년 대장정에 참가했고, 1935년 쭌이(遵義)회의에서 마오를 공산당 최고지도자로 등극시켰다.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지휘한 중국의 총사령관이자, 공산당 건설과 신중국 성립의 핵심 주역이다. 문화대혁명 때 비판을 받아 한때 격하되었지만, 린뱌오(林彪) 실각 후인 1973년의 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복귀했다.
◆7월28일 탕산대지진 40주년
1976년 7월28일 새벽 3시42분 53.8초. 허베이(河北)성 탕산시에서 진도 7.8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규모가 측정되기 시작한 이래 중국내 2번째 강진이다. 최대규모 지진은 2008년 5월 12일 발생한 진도 8.0의 쓰촨(四川성 원천(汶川)대지진. 하지만 피해규모로는 탕산대지진이 최대다. 탕산대지진은 23초동안 7.8의 진동이 있은 후 곧바로 14~16초동안 규모 7.1의 여진이 뒤따랐다. 탕산시는 완전히 폐허가 됐고, 야간작업중이던 광부들이 대부분 생매장됐다. 중국 정부는 사망자 24만명, 부상자 16만명으로 피해자를 집계했다. 하지만 총 사망자수가 75만명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9월9일 마오쩌둥 사망 40주년
1976년 9월9일 0시10분에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했다. 향년 83세였다. 사망 당시 그가 가진 직책은 중공 중앙 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명예주석이었다. 중공중앙, 전인대, 국무원, 중앙군사위는 공동으로 발표한 부고에서 마오를 ‘당과 군, 각 민족이 경애하는 위대한 지도자이자, 국제무산계급과 피압박민족, 피압박인민의 위대한 영도자’라고 평가했다.
28살이던 1921년 중국 공산당 창당대회에 참가했으며 42살이던 1935년 1월 쭌이회의에서 홍군과 중공중앙의 최고지도자에 올라선 후 사망할 때까지 중국의 넘볼수 없는 1인자로 활약했다. 문화대혁명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마오는 여전히 중국 인민의 영웅이며, 톈안먼(天安門)에는 그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사망40주년을 맞는 올해 중국에는 거센 홍색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10월22일 대장정 종료 80주년
1935년 10월19일 마오쩌둥이 이끄는 홍군 제1방면군이 산시(陝西)성 우치(吴旗)현에 도착해 산베이(陝北) 홍군과 합류하면서 홍군 주력군의 대장정이 완료됐다. 1934년 10월10일 장시(江西)성 루이진(瑞金)을 출발할 당시 9만 명에 달했던 홍군이었지만 산베이에 도착한 인원은 3000명에 불구했다. 모두 11개의 성과 24개의 강, 1000개 이상의 산을 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퇴각작전이었다. 1935년 9월 북상을 거부하고 남하했었던 장궈다오(張國燾) 휘하의 제4방면군과 후난(湖南)성, 쓰촨(四川)성 등지 홍군들로 구성된 제2방면군은 1936년 10월 22일 마오의 주력군에 합류했다. 중국은 이날을 홍군 대장정 승리일로 기념하고 있다.
◆11월12일 쑨원 탄생 150주년
1866년 11월12일 쑨원(孫文)이 광둥(廣東)성 샹산(香山)의 가난한 농촌가정에서 태어났다. 샹산은 현재 쑨원의 호인 중산(中山)으로 개명됐다. 쑨원은 민족·민권·민생의 삼민주의를 제창한 중국 공화제의 창시자로 1910년 10월 신해혁명을 계기로 중국 최초의 민주 체제인 중화민국이 수립되면서 임시 총통에 추대됐다. 그는 공산당과 제휴하고 노동자·농민과 결속을 통해 반제·반군벌 싸움에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베이징에서 숨졌다. 1929년 그의 유해는 난징(南京) 교외의 중산릉에 묻혔다. 쑨원은 국민당으로부터는 ‘국부(國父)’로, 공산당으로부터는 ‘혁명의 선행자’로 추종되어왔다.
◆12월12일 시안사변 80주년
1936년 12월12일 중국 국민당정부 동북군의 장쉐량(張學良)과 17로군의 양후청(楊虎城)이 산시(陝西)와 간쑤(甘肅)성 일대의 홍군토벌을 독려하기 위해 시안(西安)에 온 장제스(蔣介石)를 연금했다. 장쉐량은 내전정지와 공산당과의 공동항일전선 구축을 요구했지만 장제스는 먼저 공산당을 섬멸할 것을 고집했다. 연금 12일만인 12월24일 장제스는 공산당과 정전할 것을 약속하고 연금해제됐다. 이로써 제2차 국공합작의 계기가 만들어진다. 대장정 이후 세력이 약해진 공산당으로서는 기사회생의 기회가 열린 셈이었다. 장쉐량은 반역죄로 사형판결을 받은 후 감형됐고 이후 연금생활을 한다. 연금은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蔣經國)가 사망한 1988년 해제됐다. 장쉐량은 2001년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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