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주경제는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제작 ㈜루스이소니도스·제공 배급 메가박스㈜플러스엠)와 ‘좋아해줘’(감독 박현진·제작 리양필름㈜ ㈜JK필름·제공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의 개봉을 앞둔 강하늘과 만났다. 두 영화의 주연을 맡은 그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두 영화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부담에 대해 털어놨다.
“처음엔 두 작품 모두 18일에 개봉하기로 되어있었어요. 정말 당황스러웠죠(웃음). 하지만 제가 워낙 긍정적이라서 ‘이미 확정된 건 어쩔 수 없으니 즐기자’고 생각했어요. ‘좋아해줘’와 ‘동주’에 충실한 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아니면 제가 사랑하는 두 작품을 제 마음만큼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영화 ‘좋아해줘’와 ‘동주’는 일정 기간 격차를 두고 촬영한 작품이었지만 같은 날 개봉을 앞두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좋아해줘’가 개봉일을 하루 앞당기면서 강하늘은 같은 날 개봉이라는 “당혹스러운 일”만큼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에도 맞물려서 ‘쎄씨봉’, ‘스물’, ‘순수의 시대’가 개봉했었죠. 그래도 그때는 비슷한 거였지(웃음). 지금은 하루 차이잖아요? 촬영 시기도 안 겹쳤고 쉴 때도 확실히 쉬었는데 개봉이 겹치면서 ‘넌 도대체 언제 쉬니?’라는 말까지 듣게 됐어요.”
운명 같은 작품과 운명 같은 캐릭터. 신기하게도 강하늘의 필모그래피들은 일정 부분 닿아있는 ‘인연’이 있다. ‘쎄시봉’의 윤형주와 ‘동주’의 윤동주가 바로 그 예다. 실제 6 촌지 간인 가수 윤형주와 윤동주 시인이 동시간대 영화화된 것도 신기한 일이건만 강하늘은 이 인물들을 직접 연기하기까지 했다. 이에 윤형주는 강하늘에게 “너 이제 윤씨 하라”고 농을 던졌을 정도였다.
“윤형주 선생님에 윤동주 선생님까지(웃음). 제가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죠. 제가 생각하기에도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 윤동주 선생님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을 때 정말 감격스러워서 윤형주 선생님 연기했던 걸 잊어버렸었어요. 덥석 하겠다고 말해놓고 나중에야 걱정되기 시작했죠. 치기 어렸던 것 같아요. 윤동주를 좋아해서 선택했는데 대본을 잃으면서 걱정과 부담이 커졌죠.”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자 추억하는 인물, 윤동주. 강하늘은 대본을 곱씹고 그의 내면과 당시 시대를 읽어나가며 “견디기 힘든 부담”에 시달렸다. ‘처음’ 만들어지는 윤동주 시인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이 내가 연기하는 윤동주가 진짜 윤동주라 생각”할 것이기에.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찍을 수 없었다.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죠. 극복할 여력도 없었어요. 부담감을 이겨내지도 못했어요. 그저 안고 갈 뿐이었죠.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면 안고 가는 게 더 현명한 것 같아서요.”
강하늘은 우리가 사랑한 ‘시인’ 윤동주가 아닌 ‘인간’ 윤동주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저항 시인이자 패배주의적인 면모 등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혼자서 그의 입체적인 성격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홀로 빛날 수 없었기에 윤동주의 절친한 친구이자 맞수였던 송몽규(박정민 분)에 기댔고, 관객들에게 송몽규(박정민 분)과 함께 빛났다는 칭찬을 들었다. 이에 강하늘은 “송몽규가 보일 수 있었다면 목적이 달성된 것”이라며 웃었다.
“이준익 감독님도 ‘이건 동주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몽규와 동주의 이야기’라고 하셨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건 윤동주라는 시인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시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질투, 열등감 같은 것도 포함해서요.”
평소 윤동주의 시를 너무도 좋아했던 그는 “나도 모르게 윤동주를 영웅처럼 신격화했고 그의 ‘색깔’을 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본을 읽고 윤동주를 파악하며 “인간다운 평범한 감정”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점차 윤동주 시인과 자신의 접점을 찾으려 했고, 이는 강하늘의 고민거리와도 맞물렸다.
“전에 학교 선배들과 술을 마신 적이 있어요. 선배가 어떤 일로 배신을 당했고, 그게 너무 속상해서 ‘걔가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느냐. 그럴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함께 자리에 있던 또 다른 선배가 ‘걔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네 안에서 만들어놓은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지’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에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어요. 그렇구나. 연기도 마찬가지구나 싶었어요. 제 안에서 만든 이미지 때문에 이렇게 혼란스러웠던 거구나 해서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다. 강하늘은 바로 이점이 윤동주와 자신의 닮은 점이라고 말했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굉장히 자아 성찰적이에요. 이건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자기를 반성할 수 있고 돌아볼 수 있는 게 비슷해요.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곤 해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강하늘은 ‘인정’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고, 스스로의 고민을 들여다보고 번복하지 않으려 했다. 영화 ‘좋아해줘’ 촬영도 마찬가지였다. 청각장애를 가진 작곡가 이수호 역을 맡은 강하늘은 ‘청각장애’라는 특수함에 집중해 영화 전체의 흐름을 읽지 못했고 홀로 다른 톤으로 연기를 해왔다.
“아무래도 연기자들은 포커스가 특수한 부분에 맞춰지잖아요. 청각장애를 연기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보고 공부하기도 했는데 ‘장애’에 집중하니까 멜로의 느낌이 안 나오더라고요. 연기 톤이나 장르와도 어울리지 않아서 영화적인 약속으로 갈 수밖에 없었죠.”
여러 배우가 이야기를 끌고 가다 보니 연기 톤을 맞추는 것, 자신의 색을 덜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강하늘은 ‘좋아해줘’에 맞도록 조금씩 힘을 풀었고 그 결과 어리바리한 모태솔로 이수한을 귀여운 매력남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사실 어리바리한 모태솔로를 연기하는 게 낯설더라고요. 나연(이솜 분)이와 냉면을 두고 약속을 잡는 장면은 얼핏 ‘밀당(밀고 당기기)’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후시 녹음할 때 조금 더 순수하고 밝게 연기했어요. 처음 톤을 잘못 잡은 걸 빨리 깨닫고 맞춰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강하늘을 만날 때마다 ‘소보다 더 일하는 배우’라고 농담을 던지곤 했다. 매번 다른 얼굴, 다른 성과를 이룬 그에게 “또 이룰 것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멋진 배우, 연기 잘하는 배우를 목표로 두기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저는 누군가 떠올렸을 때 ‘좋은 사람’이길 바라요. 좋은 사람이 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좋은 배우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 네, 그게 제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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