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정주·한아람·서동욱 기자 = “아이고 정치는 관심도 없어요. 새누리는 진박 때문에 싫고 더민주는 친노 때문에 싫어서 아직 누굴 뽑아야 하는지 결정도 못했어요”
지난 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에서 만난 김모(65·남)씨는 이번 총선에서 지지 후보가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비단 김씨 뿐만 아니라 이날 기자가 만난 대부분 사람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 날씨와 달리 정치에 있어서 만큼은 냉소가 흘렀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내 위치한 분당갑 지역은 민주자유당과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현 집권 여당의 아성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 지역은 지난 14대 총선부터 19대에 이르기까지 총 6번의 선거에서 현 집권 여당이 단 한 번의 패배도 기록한 적이 없는 곳이다. 다만 재보궐 선거에서 딱 한번 야당이 승리한 적이 있을 뿐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요즘 상한가를 기록 중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다. 손 전 대표는 지난 2011년 치러진 제18대 재보궐 선거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강재섭 전 의원을 꺾고 분당을에서 당선된 바 있다.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권혁세 새누리당 후보와 벤처사업가 출신의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후보, 염오봉 국민의당 후보가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펼치고 있다.
권 후보는 제8대 금융감독원장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재정경제부 국장 등을 역임함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최경환 전 부총리와 가까운 친박으로 분류된다. 김병관 더민주당 후보는 문재인 전 대표가 직접 주도한 더민주 인재영입 2호로 벤처기업 솔루션홀딩스의 창업주다. 현재는 웹젠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20대 총선 후보자 중 재산신고액 1위(2637억원)를 기록해 화제가 됐다. 염오봉 후보는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사회단체인 ‘꼴찌없는글방’ 대표로 10년간 일했다.
공직과 창업 등 다른 삶의 이력을 지닌 후보들 간 승부만큼 분당갑의 표심도 요동치고 있었다.
분당구 수내동에 거주하는 한 70대 남성은 “꾸준히 새누리 후보를 지지해 왔는데 '진박' 논란을 두고 잠시 마음이 떠나기도 했다”며 “그래도 친노 패권주의의 더민주는 더 싫다. 아직은 1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현동에 거주하는 한 30대 여성은 “김병관 후보는 분당에 걸맞게 세련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며 “게임회사 CEO 출신인 만큼 분당, 판교 지역의 게임 산업을 부흥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지지율은 권 후보가 우세를 보이는 가운데 김 후보가 바짝 추격해오는 양상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인 지난 5일 한겨레신문과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권 후보는 39.7%, 김 후보는 32.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염 후보는 9.6%를 차지했다.
야권의 험지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김 후보의 약진이 두드러진 가운데 야권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하면서 권 후보가 지속적인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추세다.
권 후보는 “분당갑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텃밭이라고 불리던 수내1·2동이 지역구 개편 당시 분당을로 포함되는 바람에 안심할 수 없는 상태”라며 “재건축과 신도시 등 분당의 현안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부 요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 본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33년간 공직생활로 쌓은 네트워크와 경험이 저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이곳이 전통적으로 여당이 우세한 지역인 것 맞지만 ‘공천파동’ 등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하던 분들의 이탈표가 많아지고 있다”며 “35년 동안 새누리계를 찍은 분들도 이번에 제가 출마하면서 지지후보를 바꿨다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듣는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또 “야권단일화를 위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국민의당 중앙당 차원의 제재 때문인지 (염 후보를 )만나질 못해 아쉽다”며 “야권의 험지라고 불리는 분당갑에 스스로 들어왔지만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기 위해 이곳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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