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성신여대 '서경덕교수' 인스타그램]
이봉창 의사는 1901년 8월 10일에 서울에서 출생해 일본인이 경영하는 과자점의 점원으로 일하다가 1918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 기차운전견습생으로 취업했다.
그는 1924년에 용산일대에서 금정청년회를 조직해 간사로 있으면서 항일운동에 참여했고 다음 해에 형인 이범태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기노시타 쇼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후, 1931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고 임시정부 국무위원인 김구의 지시를 받아 일본 왕 히로히토를 암살하기로 한다. 1932년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조사과정에서 배후인물인 김구의 신원을 끝까지 함구했고, 같은 해 10월에 열린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
이봉창 의사는 1946년 광복 후에 귀국한 김구선생에 의해 서울 효창공원에 유해를 안장할 수 있었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한편, 서경덕 교수는 신주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해 '이봉창 의사 순국지' 옆에 쓰레기 수거장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요청했고, 순국지에 서 있는 '형사자위령탑(刑死者慰靈塔)'에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안내문구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제작해 설치할 것을 함께 요청했다고 알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