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캐스트의 '인물 한국사' 중 덕혜옹주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덕혜옹주는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딸로 태어났다. 고종의 사실상 외동딸이자 늦둥이었던 덕혜옹주는 고종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였고, 그녀를 위해 덕수궁에 유치원을 따로 만들어 다니게 할 정도로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하지만 1919년 고종 사후, 덕혜옹주는 고종과 함께 지내던 함녕전에서 어머니 귀인 양씨가 있는 광화당으로 옮겼다가 창덕궁 관물헌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고종의 삼년상이 끝난 후 일본은 조선황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덕혜옹주에게 철저한 일본식 교육을 시키기 시작한다.
1921년에 이르러 덕혜옹주는 '복녕당 아기씨'에서 '덕혜'라는 이름을 하사 받아 덕혜옹주로 불리웠으며, 일본 소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후, 일제의 압박에 의해 14살이 된 덕혜옹주는 어린 나이에 동경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이어, 1931년 덕혜옹주는 일제에 의해 일본의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적인 결혼을 했고 1년 후 딸 정혜를 낳았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결혼 후 정신병인 조현병에 시달렸으며, 덕혜의 병수발과 일본의 패망으로 경제적 감당이 되지 않았던 남편과는 결국 함께 오래 살지 못하고 이혼을 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나라를 빼앗기고 부모를 일찍 여읜데다가 남편과의 이혼, 자식의 실종에 이은 사망까지 겪게 되면서 덕혜옹주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덕혜옹주는 고국으로의 귀국을 원했지만 이마저도 순탄하지 않다가, 박정희 정부시절에 다시 탄원서를 올린 끝에 1962년 고국으로 귀국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일간지에서는 “구중궁궐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산천이 낯선 외국으로 끌려간데다 왜인과 뜻하지 않은 강제결혼을 하게 되자 모든 것이 구슬프고 무서워 세상살이를 체념하고 살려다가 심한 고민 끝에 정신병자가 되었다”고 그녀의 슬픈 인생을 기록하기도 했다.
덕혜옹주는 귀국 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요양하였고, 1967년 무렵부터는 낙선재에서 말년을 보냈다. 이후, 1989년 4월 21일 덕혜옹주는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났다.
덕혜옹주가 귀국 후 지병으로 고생하면서 정신이 맑아졌을 때 쓴 글이 마음을 울린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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