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지난주 금요일 파키스탄에서 또다시 명예살인이 발생했다. 파키스탄의 SNS 스타 찬딜 발로치가 친오빠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친오빠인 와짐 발로치는 자신의 여동생이 SNS에서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동생에게 약을 먹인 뒤 자는 사이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인정했다.
페미니스트를 자칭하며 온라인 스타로 떠오른 여동생을 죽인 이유에 대해 범인은 “여자는 집에 있으면서 전통을 따라야 하는데 내 동생은 그러지 않았다”며 자신의 행동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CNN은 파키스탄 사법 당국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와짐 발로치에게 명예살인 혐의뿐 아니라 국가에 반하는 범죄 혐의를 물어 기소했다고 보도했다. 국가에 반하는 범죄 행위가 인정되면 부모의 용서를 받더라도 범인은 사면받지 않고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파키스탄에서 명예살인 혐의는 피해자 가족의 용서를 받으면 사면된다.
명예살인은 파키스탄에서 한해에 무려 1,000여 건 이상 발생한다. 명예살인은 가족이 딸, 여동생, 누나, 엄마, 아내가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느낄 때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를 말한다. 살해 이유는 정혼을 거부하거나 휴대폰을 샀다거나 강간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까지 무척 다양하다.
휴먼라이츠와치의 헤더 바 연구원은 미국 매체 NPR과의 인터뷰에서 명예살인의 기저에는 여성을 소유물로 보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나의 소유물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것을 파괴할 권리 역시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심리적으로 명예살인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꾸준히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예살인에 대한 처벌은 턱없이 부족하다. 민간 인권단체인 국제 인도주의 및 윤리 연합(IHEU)는 UN 총회에서 명예살인 사건에 대해 거의 수사가 이뤄지지 않으며 수사가 이뤄진다고 해도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처벌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 수위는 일반살인에 비해 훨씬 낮다. 바 연구원은 “대부분의 사건이 쉬쉬 되면서 자살이나 실종으로 종료된다”고 말했다.
명예살인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또다른 이유는 여성의 인권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3년 캠브리지 대학이 요르단에서 10대 학생 8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1/3은 명예살인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답했다. 또한 교육을 받지 못한 청소년일수록 명예살인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UNFPA의 2000년 보고서는 매년 전 세계적으로 5,000건 이상의 명예살인이 벌어지고 대부분은 무슬림, 힌두, 시크교 사회라고 전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수치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들 사회에서 명예살인 관련법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 2009년 시리아는 명예살인을 저지른 남성에게 형을 면해주는 법을 폐지했으나 최소 2년 징역형으로 대체하는 데 그쳤다. 또한 올해 초 파키스탄 총리는 명예살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강가의 소녀(Girl in the River)'를 본 뒤 관련법 개정을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 ‘강가의 소녀'는 정략 결혼을 피해 사랑하는 사람과 도주했었다는 이유로 얼굴에 총을 맞고 강가로 던져져 죽을 위기에 처했던 18세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녀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그런 짓을 저지른 아버지와 삼촌을 용서하라는 가족들의 압박에 시달린다.
한편 명예살인은 서방 국가에서도 일어난다. 2015년 5월 미국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매년 미국에서는 23~27명의 여성이 명예살인의 희생자가 된다. 일례로 지난 2010년 이라크 이민자 팔레 알말레키는 자신의 지프 자동차로 20살된 딸을 들이받아 살해했다. 딸이 너무 서구화되었고 이라크에 있는 사촌과 정략결혼을 거부해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게 그가 밝힌 살인의 이유였다. 2011년 그는 3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일각에서는 명예살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마치 살인을 정당화하는 느낌을 주며 실상 명예살인은 터무니없는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같은 단어를 아예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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