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원전사고 다룬 '판도라', 더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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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0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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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판도라' 스틸컷 속 배우 김남길의 모습[사진=NEW 제공]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신기한 일이다. 4년 전 박정우 감독이 집필한 영화 ‘판도라’는 2016년 현재의 모습과 무섭도록 닮아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뒤, 온갖 불행을 맞닥뜨리게 된 영화 속 인물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바로 그 이유다. 지진과 원전 사고, 어수선한 시국과 무능한 정부를 매섭게 비판한 이 작품은 현 시국과 어우러지며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힘을 얻게 됐다.

동남권의 한 마을. 동네 주민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밥벌이’로 여기며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 모두가 원자력 발전소를 “고마운 곳”이라 부르며, 현재에 만족하고 지내지만, 재혁(김남길 분)에게 이곳은 지옥보다 못한 곳이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벌어진 사고로 형과 아버지를 잃은 재혁은 늘 마을을 떠날 궁리만 하고, 어머니(김영애 분)를 비롯한 형수 정혜(문정희 분), 친구들은 재혁을 “철이 없다”며 비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가 믿고 있던 원자력 발전소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진다. 고위 관계자들은 사고를 숨기기에만 급급하고, 원자력발전소 직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희생당한다. 사고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뒤늦게 사태를 알아챈 청와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사건 현장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과 마을을 떠나려는 동네 주민들, 무력하게 사고를 지켜보는 청와대의 모습을 교차로 보여준다. 이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사고의 참혹함과 경각심을 더 사실감 있게 표현한다.

사실 ‘판도라’를 두고, 평범한 재난영화라 평가할 수 있다. 재난 영화가 가진 서사나 레퍼토리를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도라’는 투박하지만, 묵직한 한 방을 날릴 줄 아는 영화다. 우리와 아주 가까운 인물들이 벌이는 사투며 이들의 호소는 어떤 치장보다 더 감정을 동요시킨다. 영화를 관통하는 강력한 메시지는 이 작품의 장점으로, 혹은 단점으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

앞서 박정우 감독은 지난 언론시사회 현장에서 “이 작품은 90% 이상 현실성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처 알지 못하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파헤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박정우 감독이 그린 ‘판도라’ 속, 세계는 현 시국과 맞물리며 더할 나위 없는 ‘사실감’을 얻게 됐다. 관객들은 무능한 대통령, 그를 압박하는 총리와 국민을 속이려는 실세들의 모습을 더 아프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러닝타임은 136분이며 관람등급은 12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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