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의 행복한 경제] 천년 묵은 교토의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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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1-0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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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1993년 1월 교토, 마치 나의 첫 방문을 환영하듯 함박눈이 쏟아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금각사에 갔다. 눈내린 금각사는 교토 8경 중 하나라고 한다. 내 얼굴만한 크기의 카메라 수십대가 호수가에 줄지어 서있었다. 푸짐하게 내린 눈이 겨울 호수, 고즈넉한 건물, 화려한 금박과 어울려 환상적인 피사체를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 날의 ‘진사’들은 누구나 행복했을 것이다. 내 눈도 호강했다. 요즘말로 안구정화(?).

일본을 상징하는 천년고도는 도쿄(東京)가 아니라 교토(京都)다. 서울이 600년 묵은 도시라면 교토는 천년 묵은 도시다. 헤이안 시대(794년)부터 메이지유신 이후 도쿄 천도(1869년)까지 무련 1075년 동안 일본 천왕이 거주했던 곳이다. 이처럼 묵은 도시 교토에는 묵은 기업들이 많다. 우리나라에 개성상인이 있다면 일본엔 교토상인이 있다. 교토상인은 상인 중의 상인(아킨도)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교토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가 ‘교세라’다. 교세라의 원래 회사 이름은 교토세라믹이었다. 교세라는 파인세라믹, 전자부품, 이동통신, 정보기기 등 첨단 제품과 서비스로 세계시장에 널리 알려진 기업이다. 교세라에는 교세라보다 더 유명한 게 있다.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과 그의 ‘아메바 경영’이다. 아메바 경영이란 능력 있는 사원에게 아메바와 같은 10명 이내의 작은 조직을 책임지고 운영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그 아메바와 관련된 영업과 생산 조직을 별도 사업부처럼 독립시켜서 채산성을 따로 관리한다. 가계부처럼 알기 쉽게 손익계산서를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회계지식이 없는 일반 직원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 상사와 직원 간의 소통이 활성화됐으며, 직원들은 회사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보람, 주인의식을 갖게 됐다. 그 결과 교토의 작은 벤처기업이었던 교세라는 세계적 기업으로 커졌다. 1959년 창업 당시 자본금 300만엔, 직원 28명으로 출발했던 교세라는 2014년 기준 국내외 계열사 226개, 직원 6만8,185명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매출은 1조5,265억엔, 영업이익은 934억엔을 기록했다.

교세라를 창업한 이나모리 회장은 마쓰시타 고노스케(마쓰시타전기(파나소닉) 창업주), 이데이 노부유키(소니 창업주)와 더불어 ‘경영의 신’으로 불리고 있다. 최근에도 그는 실제 상황에서 실력을 보여줬다. 적자로 파산한 일본항공(JAL)의 회생을 위한 구원투수로 2010년 긴급 투입된 이나모리 회장은 교세라의 ‘아메바 경영’을 활용해 2년만에 흑자로 돌려놨다.

교토에 교세라만 있는 건 아니다. 닌텐도, 와코루, 오므론, 일본전산, 무라타제작소, 호리바제작소 등도 세계적인 기업들이다. 일본의 버블 붕괴로 많은 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2000년대 초반에도 묵묵히 높은 수익성을 자랑했던 기업들이 바로 교토에 소재한 기업들이었다. 그 결과 이들은 ‘교토식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바 있다.

그리고 천년 묵은 교토에는 천년 묵은 가게가 5개나 있다. 그 중 하나가 ‘이치와’(一和)다. 천년고도 교토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떡집이다. 창업자의 24대손이 오늘도 변함없이 인절미를 굽고 있다. 맛있는 쌀을 원료로 떡을 만들고, 대나무 꼬치에 끼워서, 숯불에 구운 후 맑은 조청 같은 소스를 발라서 내놓는다. 15개에 500엔.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고 구워서 친절하게 파는 것이 천년을 버틴 ‘이치와’의 비결이다. 하나 더하자면, 정체불명의 맑은 조청 같은 달콤짭잘한 소스가 비장의 무기다.

교토는 묵은 도시가 더 아름답고, 묵은 기업이 더 강하고 새로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아직 100년 기업도 흔치 않다. 일신 우일신하여 천년기업으로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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