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하고 실행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해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21일 새벽에 발부했다.
이로써 특검이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적용과 함께 공들여 온 블랙리스트 실체가 처음으로 사법처리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의기소침해졌을지도 모르는 특검의 국정농단 수사가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특검이 길지않은 수사기간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 수사에 전력한 것은 의미가 크다.
박근혜 정권의 여러가지 국정농단 사례 중 언론인으로서 가장 분노한 대목이 블랙리스트 운용이었다.
기사의 형식이지만, 표현을 먹고사는 기자가 자신의 자유로운 표현에 재갈이 물릴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이번에 드러난 것은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지만, 이 정부는 각 분야에 걸쳐 '드러나지 않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했을 것이다.
그동안 검찰과 특검의 수사 결과를 보면 그런 유추는 합리적인 상식임을 알게 된다.
어쩌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성향에 따라 분류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라가 할 일이 아니다. 나라가 할 일이 아닌데 그것이 버젓이 저질러지고 있는 나라에 살다보니 시민들은 '이게 나라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김기춘 전 실장과 조 장관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시기가 두 사람이 청와대에 근무할 당시였다.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가 나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운영한 것이다. 그 정점에는 누가 있을 지도 짐작이 간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이유는 범죄사실이 소명된다는 것이었다. 아직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남았다지만, 실존하는 블랙리스트가 마술처럼 일순간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박근혜정권이 저지른 최악의 부패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블랙리스트의 기원은 1660년 영국의 찰스 2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2014년 대한민국의 블랙리스트라니. 역사가 거꾸로 거스른 것이다.
찰스 2세는 자신의 즉위 전 의회와 갈등을 빚던 선왕 찰스 1세가 1649년 단두대에 처형되는 것을 목격하고 당시 사형집행에 서명한 59명의 명단을 작성한다. 이 명단이 블랙리스트의 기원이 된다.
찰스 2세는 즉위 후 명단에 오른 이들에 대해 무자비한 보복에 나서고, 그 명단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올리버 크롬웰의 이름도 있다.
350년 전 왕정시대에나 가능했던 블랙리스트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 다시 등장한 것은 역사의 수치다. 한없이 큰 부끄러움과 함께 그만큼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것이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다. 1791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누구도 자신의 양심에 따른 표현을 제약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도 제19조 사상의 자유를 포함한 양심의 자유를 비롯해 제21조 언론과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에 이어 제22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자유를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다.
헌법적 보장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른 표현의 자유는 천부적 권리에 속한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상식이다.
우리 현대사에서는 암울했던 유신과 군부독재 시대 동안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면서 이를 되찾기위한 민주화시위는 피로 얼룩졌던 기억이 선연하다.
이번에 드러난 블랙리스트는 헌법정신을 훼손했던 구정권들이 차례로 몰락한 뒤 표현의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알았던 상식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렸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유에 못지않게 사상이나 의견을 표현할 자유는 중요하다.
그것은 민주화 시대의 기본이다. 기본이 무너져내린 처참함을 확인한 신새벽에 이 글을 쓴다. 기본을 다시 세우는 것은 오롯이 시민들의 몫이다.
블랙리스트 작성의 기원을 제공했던 영국의 찰스 1세는 죽기 전 "나는 이제 부패한 나라에서 영원히 변치않는 나라로 간다. 이 세상의 어지러움이여 안녕히"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빌어 "이 땅에 만연된 부패의 썩은 냄새를 걷어치우고 싶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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