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하면 제일 먼저 어디를 가야 할까, 또 무엇을 먹을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내게 '전라남도 고흥'은 미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기에 고흥 땅을 밟는다는 것 자체에 설렘만이 가득했다.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 생동하는 경칩(驚蟄)이 훌쩍 지나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春分)이 시작할 무렵 고흥에 다녀왔다.
싱그러운 봄바람의 손짓에 이끌려 거니는 곳곳도, 짭조름한 갯내음에 씰룩이는 코끝도, 고흥에서 보낸 모든 시간은 '행복'이었다.
조금 과장해 배를 타지 않고 멀리뛰기를 하면 연홍도에 착지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의도치 않게 한바탕 웃음을 준 후 배를 타고 3분쯤 들어가니 51가구가 거주하는 연홍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햇살 좋은 날의 연홍도는 아늑했다. 섬의 모양이 넓은 바다에 떠 있는 연(鳶)과 같이 보인다고 해 이름 붙여진 연홍도에서는 사계절 내내 낚시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전국 유일의 섬마을 미술관으로 유명세를 탔다.
방파제 위에 하얀 소라, 굴렁쇠를 굴리는 섬 아이들이 형상화된 조형물이 우리를 반긴다. 파란 하늘 아래 파랑과 빨강 계열의 원색 지붕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담으니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미술 섬 연홍도에는 연홍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1998년 폐교된 금산초등학교 연홍분교장이 지난 2006년 재탄생한 공간이다.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폐허가 되기도 했지만 공방을 새로 짓고 내부 조명시설을 교체하는 등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연홍미술관은 오는 4월 7일 ‘섬 여는 날’ 행사에 맞춰 재개관한다.
미술관 정원 앞의 바닷속에는 물고기 조형물이 설치돼있다. 옥빛 바닷속에서 은빛 스테인리스스틸 물고기가 등을 드러내고 있는 형상이다.
연홍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사진박물관으로 변신한 부둣가 집도 만날 수 있다. 주민들이 기증한 추억의 사진 400여 장이 연홍도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섬 남쪽 끝에서 북쪽 끝을 잇는 둘레길을 천천히 걸었다. 약 30분 정도 걸리는 무난한 길이라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몽돌 사이를 스치는 잔잔한 파도, 향긋한 바다내음…거금도 몽돌해변
봄빛을 가득 머금은 햇살 좋은 날, 고흥에서 거금도 드라이브를 놓칠 수 없었다.
영롱한 바다를 옆에 끼고 해안도로를 달리니 금산 몽돌해변, 갯바위 낚시터 등 볼거리가 속속 등장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수평선 위로 크고 작은 섬들이 고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란 애칭이 왜 붙었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섬 곳곳에는 화사한 봄빛이 가득했고 하얀 매화가 소담스런 꽃망울을 툭 틔워내 장관을 이뤘다. 매화 향에 취해 곳곳을 둘러본 후, 갑자기 봄 바다를 마주하고 싶어졌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 그리고 탁 트인 바다를 만끽하기 위해 오천 몽돌해변을 찾았다.
◆용이 이곳에서 승천했을까…용바위의 위엄
절경을 보여주겠노라 자신하는 일행을 따라 용바위로 향했다.
반석과 암벽 층으로 이뤄진 용바위의 위용이 실로 대단하다. '고흥에 이런 멋진 곳이 또 있었단 말인가.'
"먼 옛날 남해의 해룡이 하늘로 승천할 때 이곳 암벽을 타고 기어 올라갔대요."
한 일행의 이 말에 '설마'하며 해변과 이어지는 바위 아래쪽부터 위까지 쓰윽 한 번 둘러보는데 정말 용이 승천할 때 이곳을 훑고 지나간 듯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한참 넋을 잃고 주변의 풍광을 바라보는데 하나둘씩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변이 넓은 반석으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성 덕에 단체나 가족 단위 나들이 장소로 활용될 뿐 아니라 주변 전체가 갯바위 낚시터로도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어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봄을 마중하러 삼삼오오 모여든 나들이객에게 그림 같은 이곳을 양보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에 아쉬움이 잔뜩 묻어났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