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중국의 窓] 중국몽(中國夢)과 ‘중화민족의 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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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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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화-초국가주의 충돌

[서정경 성균중국연구소 연구교수]

서정경 성균중국연구소 연구교수(국제정치학 박사)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해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를 방문한 자리에서 ‘해외이익의 효과적 보호’를 외교사명 중 하나로 꼽았다.

점점 더 많은 자국기업과 국민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으며, 그들의 합법적 권익을 정부가 보호할 것이라는 취지다.

국민과 국가의 영토적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적 교류가 자유로운 세계화 물결 속에서 해외로 나가는 중국인 인구가 폭증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해외 화교뿐 아니라 현지 국적을 취득한 화인들과 함께 중국 외교정책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상 해외 화교를 바라보는 중국 정부의 관점은 자국이 겪어온 역사의 궤적과 무관하지 않다.

청조 이전 ‘중화질서관’ 속에서 중국 정부는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소위 ‘미개인’들에 대한 관리에 소홀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해외로 떠난 자들은 버린 백성, 즉 기민(棄民)이라 칭해졌다. 그러다 서세동점시기 혈통보다 출생지를 중시하는 서구의 국적개념이 유입되자, 청조는 ‘국적조례(大淸國籍條例)’를 공포했다.

출생지를 불문하고 출생 당시 부친이 중국인인 자, 출생 당시 이미 사망한 부친이 생전에 중국인이었던 자, 그리고 부친이 국적 불분명자나 무국적자여도 모친이 중국인이면 모두 중국 국적자로 여겼다.

이처럼 강한 ‘혈통주의 원칙’은 오늘날 중국 국적법 및 민족주의 정서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중국은 화인들에게도 소위 ‘중화자손’이라는 미명하에 중국 국적 회복의 길을 열어뒀으며, 화교뿐 아니라 화인의 중국거주 친족들에게도 정치, 경제, 교육 및 취업 등 제반 권익을 보장해주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당국가(party-state)이자,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의 화교정책에 국익추구를 우선시하는 국가주의 성격이 강하게 반영돼 왔다는 사실이다.

신중국 성립 초기 중국의 화교정책에는 신생국가로서 생존을 도모하고 사회체제를 갖춰 나가려는 국가적 관점과 의도가 투영됐다.

화교정책의 원칙은 그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대만이 아닌 신중국을 인정하고, 경제적으로 신중국 건설에 협력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1950년대를 거치며 제3세계와의 우호관계가 중요해지면서 오히려 정부가 나서 해외 화교들에게 현지국적을 취득하고 현지 정치활동에 개입하지 말라고 요구하게 된다.

현지와의 동화를 거부하는 화교들은 아예 본국으로 소환시킴으로써 당시 반화교 폭동으로 마찰을 빚는 동남아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안정을 우선시했다.

개혁·개방시기에는 화교·화인의 자본과 경제력이 필요해졌다. 이에 국무원 교무판공실은 각 성·시·자치구 인민정부, 국무원 각 기구, 해외 대사관, 홍콩마카오업무위원회에 대외비로 문건을 하달하며 문혁시기 박해를 받았던 화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한 포용정책을 주문했다.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 추진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남순강화(南巡講話)에서도 “해외유학자들이 모두 귀국해주길 바란다. 그들의 과거 정치적 태도가 어떠했든 상관없이 모두 다 귀국해도 된다. 귀국 후 그들이 잘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1990년대 중반 ‘중국위협론’의 성행은 중국정부로 하여금 주변국과의 관계증진을 통해 미국 등 서구의 압박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때마침 인도네시아에서 발발한 대규모 반화교 폭동에 대해 ‘타국 내정 불간섭’을 표방하며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자국민의 원성을 초래했다.

그러면서도 중화민족의 부흥과 양안통일을 위한 전 세계 화교·화인의 역할과 단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강해져만 갔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은 2014년 6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7차 세계화교단체 단합대회에서 “국내외 중화자손들이 긴밀하게 단결할 때만이 힘과 지혜를 발휘할 수 있고, 중국꿈(中國夢) 실현의 강대한 역량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오늘날 중국정부의 인식에는 세계화 시대 해외로 이주한 자국민 집단에게 민족 이데올로기를 강조함으로써 국가의 공간적 확장을 기하려는 ‘위로부터의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가 발견된다.

이는 근대시기 국민, 영토, 주권의 결합으로 형성된 국민국가(nation-state)가 국민의 이주 및 보호에 관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던 시각의 연속이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근대시기 경험한 굴욕의 세기로 인해 인권보다 주권을 늘 우선시한 국가중심적 사고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56개 민족들은 ‘중화민족대가정’ 담론 속에서 끊임없이 통합과 단결을 요구받는다. 소위 ‘중화의 자손’들은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개인의 욕망이나 가치보다 국가의 존엄과 비전을 더욱 우선시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살아간다.

여기에 인간의 자유와 보다 나은 삶의 지향,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가치추구 및 자유로운 이동을 담보하는 세계화 사조와의 충돌이 있다.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열풍’이 일어난 세계화 시대에 ‘자국이익 우선’의 국수주의가 함께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중국은 ‘중화민족의 대부흥’이라는 국가목표 실현과 커져만 가는 개인욕망 간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 것인가.

분명한 것은 아직까지는 중국 사회 전반에서 국가중심적 사고관이 사회를 관통한다는 점이다. 초고속 성장은 대중뿐 아니라 해외 화교들의 정부에 대한 전반적 지지를 뒷받침해왔다.

14억명에 달하는 중국 국민과 해외 화교·화인들의 가치판단 및 삶의 행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인식과 삶의 모습, 보다 거창하게는 인류문명의 진보와 퇴락 그리고 발전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의 모습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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