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이번 출장은 확실히 눈에 띈다. 그가 향한 곳이 바로 베트남이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포스트 중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을 사상 처음 방문했다. 베트남에서도 즉각 화답에 나섰다. 트란다이쾅 베트남 국가주석이 직접 정 부회장을 영접, 투자 및 협력 관계에 대해 논의했다.
이 같은 모습은 사실 낯설다. 그동안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해외 방문 시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하는 모습과 달리, 정 부회장의 행보는 꽤나 조용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적은 좀체 드물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국 정계의 핵심 인물로 부상하는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며 향후 현대차그룹의 중국 사업 발전에 밑거름을 만들기도 했다. 또 세계 주요 모터쇼는 물론 올해 CES에서는 공식 무대에 올라 기조연설에도 나섰다. 국내 CES 참가업체를 통틀어도 오너가 직접 프레스 행사에서 공식 발표를 한 적은 없었다.
이렇다 보니 정 부회장이 또 어디로 향할지, 누구를 만날지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 부회장의 눈길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향후 현대차의 미래 전략에 대한 구상이 달라질 수 있다. 당장 업계에서는 신흥 시장인 동남아와 러시아, 중동을 비롯해 새로운 생산공장 설립을 앞두고 있는 인도를 주시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이처럼 글로벌 경영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현대차그룹이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고민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적극적인 미래 사업 구상과 신시장 발굴 없이는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사상 최악의 실적을 냈다. 내수시장 점유율 하락과 실적 부진, 노조 임금협상 장기화 등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2010년 이후 6년 만에 5조원대로 추락했다. 영업이익률도 5년 연속 감소하며 지난해 5.5%로 떨어졌다. 올해 주변 환경도 장기 불황과 경쟁사들의 공세 등으로 녹록지 않다.
더구나 일각에서는 아직 정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다. 아버지만큼 과연 현대차를 이끌 수 있을지 '넥스트 현대차'에 대한 우려에서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정 회장의 그늘 아래에서도 막강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근래에 보여지는 그만의 선 굵은 행보는 업계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늘 현장을 먼저 챙기고 부지런한 스타일은 할아버지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꼭 빼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쳇말로 '노오력(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하라는 말로, 어지간한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풍자한 신조어)'이 대단하다.
어떤 표현이 사실 어울릴지는 모르겠으나 '매서운' 존재감을 보이는 정 부회장의 요사이 모습을 보면 현대차의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회사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는 정 부회장이 현대차의 미래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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