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펜 '비밀계좌설' 제기하자 마크롱 고소장 제출…佛언론 "토론 아닌 난투극"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대선 결선에서 맞붙는 에마뉘엘 마크롱(39·앙마르슈)과 마린 르펜(48·국민전선)후보가 양자 TV토론에서 격돌한 다음 날에도 거친 표현을 써가며 비방전을 이어갔다.
프랑스 언론들이 4일(현지시간) 대부분 전날 TV토론을 "토론이라기보다 난투극에 가까웠다"며 과열 양상에 우려를 표한 가운데, 마크롱 캠프는 르펜이 허위사실을 주장했다면서 수사당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마크롱은 이날 프랑스앵테르 라디오에 출연해 르펜 측의 자신에 대한 음해와 거짓말에 대해 반박할 기회를 얻어 만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장마리 르펜과 결선에서 맞붙은 자크 시라크처럼 양자토론을 거부할 생각을 했다면서도 "모든 거짓말을 다 제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일부라도 반박할 수 있다고 생각해 토론에 응했다"고 말했다.
장마리 르펜(88)은 국민전선을 창당한 극우 정치인으로 르펜의 아버지다. 15년전 대선에서 극우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대선 결선에 오르는 파란을 연출했지만, 결선에서 시라크에게 완패했다.
마크롱은 "몇달 전부터 내가 금융업계와 이슬람교도 또는 독일의 첩자라는 등의 소문이 인터넷에 나돌아도 제대로 반박할 기회도 없었다"면서 "거짓에 맞서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자토론에서 비방과 인신공격, 비아냥거림 등이 난무했다는 평가에 대해선 "계속해서 모욕을 당하는데 고귀할 수만은 없지 않나. 전투에 나가는데 스스로 좀 더럽혀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대다수 프랑스 언론들은 르펜과 마크롱의 격렬했던 양자토론에 대해 "주먹다짐" "난투극"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등의 용어를 써가며 품격을 잃은 토론이었다고 혹평했다.
르피가로는 사설에서 "전례가 없이 폭력적이며 품위를 잃은 토론이었다. 난투극을 토론이라고 칭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르몽드도 사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적이었고 잔인했다"면서 특히 "극우세력을 상대로 정상적으로 토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그동안 중상모략과 협박에 기대온 르펜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고 르펜을 비난했다.
마크롱 캠프는 르펜에 대한 법적 대응에도 돌입했다. 르펜은 전날 토론에서 마크롱이 바하마에 비밀계좌를 갖고 있다는 루머가 있다고 공격했는데 이는 허위사실이라는 것이다.
파리 검찰청은 고소장을 접수한 뒤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고 가짜 뉴스가 이용됐는지 예비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예비조사는 정식 수사 직전 단계로 일종의 내사 개념이다.
르펜은 한 발짝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BFM TV에 출연한 그는 마크롱의 해외비밀계좌 보유를 정식으로 제기한 것이냐는 물음에 "아니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면 어제 했을 것"이라며 "질문을 한 것뿐이다. 내게 증거가 있었다면 어제 제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 마크롱과의 양자토론에 대해선 "마크롱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려고 했다"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평했다.
르펜은 "마크롱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그가 기를 쓰고 지키려는 이익은 무엇이며 비전은 무엇인지 등 모든 베일을 벗기려고 결심했고 성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르펜은 특히 "과거 대선에서 비슷한 부류의 후보 중에 택일을 했다면,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의견이 충돌했다"면서 "(어제의 토론이) 기존의 룰과 프랑스 전체를 뒤흔들었다"고 자평했다.
마크롱과 르펜은 결선투표를 사흘 앞둔 이 날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며 세 결집에 나섰다.
마크롱 캠프는 포퓰리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마크롱에게 투표해달라고 호소하는 영상메시지를 제작해 배포했다.
영상에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후회하는 미국과 영국 유권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프랑스에서 더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마크롱에 대한 공개 지지의사를 밝혔다. 마크롱 측이 공개한 영상에서 오바마는 마크롱의 "자유주의적 가치관"을 높이 평가하고 "그가 프랑스의 유럽과 세계에서의 역할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르펜은 지방 유세에 나서 마크롱을 '야만적인 세계화론자'라고 공격하고 자신이 진정한 노동자·서민의 대변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브르타뉴 지방의 한 운송회사를 방문했다가 반대 시위대와 마주치기도 했다. 시위대는 계란을 집어 던지며 르펜에게 "파시스트 꺼져라" 등의 구호를 외쳤으나,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르펜은 계란에 맞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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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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