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자 "우울·좌절감 빠진 시절 이 사건 계기로 '외칠 공간' 생겨"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벗이여 고이 가소서 그대 뒤를 따르리니'
1987년 '6월 항쟁'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고(故)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소식을 전한 연세대 학보 '연세춘추' 호외가 30년 만에 빛을 봤다.
15일 이한열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연세대 85학번 임종규 씨는 1987년 7월 9일 발행된 연세춘추 호외를 지난달 사업회에 기증했다.
그해 6월 9일 '구속학우 환영 및 애국연세인 총궐기대회' 집회에 참가했다가 이어진 대정부 시위에서 직격 최루탄에 맞은 이 열사는 한 달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두 면으로 된 한 장짜리 호외의 헤드라인은 '벗이여 고이 가소서 그대 뒤를 따르리니'라는 글귀다.
1면에는 빈소에 분향하는 시민의 사진과 장례식, 빈소 조문, 추도 기간 일정, 부검 결과 등 소식이 빼곡히 적혔다.
오른쪽에는 '책임소재 철저 규명되어야'라는 안세희 당시 연세대 총장의 추도 글과 연세대 대학원 학생회의 애도사가 실렸다.
2면은 이 열사가 남긴 편지와 시를 비롯해 병세 일지, 약력, 주변 이야기 등으로 채워졌다.
특히 그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 열사의 동생 훈열 씨를 인터뷰한 '그토록 자상하던 형을 누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왼쪽 하단에 실렸다.
이 기사를 쓴 이는 "우리 모두의 슬픔도 큰 것이지만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자는 훈열 군을 만나 어떻게 얘기하나 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훈열 군은 차분하고 의지 서린 눈빛이었다"고 전했다.
훈열 씨는 인터뷰에서 "형은 분명히 형 자신만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고 강조했다.
이 열사의 장례식을 다룬 모교 학보의 호외는 역사적 의의가 적지 않지만, 그간 전해져온 인쇄본은 이번에 기증된 것이 유일하다고 알려졌다.
연세춘추를 제작·발행하는 연세대 대학언론사는 모든 연세춘추 공식 발행본을 보관하고 있다. 다만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방학 중 만들어진 이 호외는 연세춘추 측에도 소장한 것이 없다고 안다"고 전했다.
모든 연세춘추를 디지털화해 보관하는 연세대 학술정보원의 1987년 연세춘추 목록에도 호외는 없다.
호외를 보관해온 임종규 씨는 당시 자신이 찍은 이 열사 영결식, 운구 행렬, 장례식 사진도 함께 사업회에 기증했다. 임씨는 "사실 이한열 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는 등교할 때 정문에 전투경찰이 서 있던 엄중한 시절"이라며 "저는 격렬한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시위할 때마다 바로 경찰에 의해 제압되는 그런 상황에 대한 우울함과 좌절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임씨는 "불행한 일이지만, (이 열사) 피격 이후에 조금은 마음 놓고 외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또 장례식을 계기로 모든 에너지가 결집됐다"라며 "그런 상황이라 '(장례식이) 역사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진을 찍으면서 울컥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사업회는 이 열사와 같은 86학번인 박상호 씨로부터도 이 열사 사망 당시의 유인물, 성명서, 대학 신문 등 기록 자료를 전달받았다.
사업회는 이 열사 30주기를 맞아 준비 중인 내달 7일 전시회에서 호외, 사진, 기록물 등 자료를 공개한다.
또 이틀 뒤 9일에는 서울시청광장에서 장례 행렬을 재연한다. 30년 전 이 열사 영정과 영정 차를 만든 최병수 작가가 영정 차를 다시 만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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