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개봉한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감독 변성현, 이하 ‘불한당’)는 범죄조직의 1인자를 노리는 재호(설경구 분)와 패기 넘치는 신참 현수(임시완 분)의 의리와 배신을 담은 범죄액션드라마다.
“팔 근육과 가슴골? 처음에는 의아했죠. 노출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걸 요구하는 걸까. 하지만 감독님 눈에는 보였던 거죠. 수트핏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하하하. 다른 건 필요 없고 그것만 해달라고 하기에 열심히 팔과 가슴만 키웠어요.”
이번 작품에서 설경구는 오세안무역의 실세 재호 역을 맡았다. 그는 끊임없이 변주되고 변화하는 캐릭터다.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설경구의 연기는 재호라는 캐릭터, 그 자체를 설명한다. 약쟁이로 시작해 범죄조직의 2인자까지 오른 그는 때로는 경박하게, 때로는 묵직하게 상대를 압도한다.
“처음부터 (웃음소리를) 그렇게 잡은 건 아니었어요. 몽타주 신으로 들어갈 거라 대사를 넣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웃어보자’고 생각했는데, 웃음소리에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평범하게 웃는 건 싫고…. ‘되바라지게 웃어보자’ 했는데 (웃음소리를 들은) 변 감독이 딱 그러더라고요. ‘계속 이렇게 웃어주면 안 돼요?’ 하하하. 그래서 비어있는 부분마다 그렇게 웃어보기로 했죠.”
‘불한당’이 여타 언더커버 소재와 궤를 달리하는 것은 감정선이다. 범죄조직에 잠입한 형사의 혼란보다는 현수와 재호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이들이 겪는 감정 변화를 섬세히 다룬다.
“저는 현수에 관해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믿고 싶은 아이’라고 설정했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자 믿고 싶은 사람이라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구축되고 ‘임시완을 사랑하라’는 변 감독의 요구를 이해할 수 있게 됐죠.”
화려한 액션의 누아르이자 섬세한 감정선을 가진 멜로 영화. 설경구는 다시 한번 “여운이 남는 범죄 액션드라마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짧으면 영화를 본 그 당일”이라도.
“나이를 먹다 보니까 여운이 남는 작품을 하고 싶더라고요. 의식적이지 않더라도 가슴 속에 어떤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길 바라요.”
과거 변성현 감독은 영화 ‘나의 PS 파트너’ 인터뷰 도중, 지성에 대해 “반듯한 이미지를 구겨버리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인상 깊게 본 설경구가 변 감독에게 “나도 구겨버릴 거니?”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기상천외였다. “선배님은 워낙 구겨져서 빳빳하게 펴고 싶다”는 거다.
“제가 멋 부리는 역이 많이 없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떻게 (이미지를) 바꿔야 하지?’ 걱정됐어요. 변 감독은 ‘제대로 슈트를 입혀서 기존 이미지를 다 바꿔버리겠다’고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어야죠.”
영화 ‘공공의 적’ 시리즈를 비롯해, ‘감시자들’에 이르기까지. 기존 설경구의 이미지는 “잔뜩 구겨지고” 자유분방했다. 하지만 분명 재호는 달랐다. 포마드를 발라 정갈하게 넘긴 헤어스타일이며 맞춤 슈트, 명품시계까지. 설경구가 그를 낯설게 느낄 만도 했다.
“매번 변 감독을 만나 물어봤어요. ‘어때, 좀 펴졌냐?’ 그러면 변 감독은 ‘음, 한 8~90% 정도요’라고 말했어요. 하하하. 사람이 간사한 게 시간이 지나니까 의상, 헤어에 슈트까지 익숙해지더라고. 자세가 달라지니 태도도 달라지는 것 같고요.”
변 감독에 대한 설경구의 애정은 남달랐다. 의심과 걱정을 타파하게 된 것도 변 감독에 대한 믿음 덕이었다.
“꼴통 같아요. 하하하. 처음에 제가 변 감독에게 ‘이미 언더커버 소재는 많이 있는데 굳이 이런 얘기를 또 왜 하냐’고 했더니, ‘다른 방향으로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청산유수로 그럴듯하게 얘기해도 넘어갈까 말까 한데 말도 어눌하게 하고, 언변도 좋지 않아서…. 그런데, 그게 더 믿음직하더라고.”
설경구는 변 감독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 ‘박하사탕’ 출연 당시 이창동 감독과의 에피소드를 덧붙였다. “저를 왜 캐스팅하셨어요?” 물었더니, “자신이 없다고 해서”라고 답한 일이었다.
“당시 다른 두 명의 후보는 ‘난 잘할 수 있다’고 했대요. 그런데 이창동 감독님은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불안해 보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땐 그 말이 이해가 안 갔는데 변성현 감독을 보고 알게 됐어요. ‘전 이건 잘하고, 이건 못해요’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데 신뢰가 가는 거야. 하하하. 말을 잘했다면 아마 의심했을 거예요.”
단단하고 굳건한 믿음. “영화를 보고, 그 믿음에 대해 변 감독이 보답한 것 같냐”고 묻자 설경구는 호쾌하게 웃어버린다.
“칸 갔잖아요. 하하하. 제가 농담으로 변 감독에게 그랬어요. ‘이 영화가 아무런 차별성이 없다면 내가 너를 죽여버릴 수도 있다’고. 때마다 변 감독은 ‘왜 협박하냐’고 했었는데 칸 국제영화제 초청이 된 후에 ‘안 죽이셔도 되겠네요’ 하더라고요.”
데뷔 초, 베를린·칸·동경 등 영화제 초청이 줄을 이었기에 칸 국제 영화 초청이 그리 대단한 일인 줄 몰랐다. 영화제 초청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그는 “몇 작품 말아먹고 나니 (칸 영화제 진출이) 새롭다”고 말한다.
“사실 생각지도 못했어요. 노린 것도 아니고 범죄 액션 장르니까 못 갈 줄 알았죠. 의외라서 더 좋아요. 이번에는 칸 영화제를 잘, 즐기다 오려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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