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미학]재료의 풍미 그대로 살린 여름 보양식…그 맛, 말해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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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정 기자 사원
입력 2017-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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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위 쫓고 기력 돋우는 장흥 9味

[글·사진 장흥=기수정 기자] '맛(味)'이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다. 하지만 좋은 요리, 맛있는 요리의 기준은 분명히 존재한다. ‘싱싱한 재료 본연의 맛’은 훌륭한 요리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요소다. 이를 잘 살릴 때 음식의 맛은 배가 된다.

기력이 쇠하고 입맛도 떨어지는 이맘때, 특별할 것 없는 조리법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곳이라면 어디든 떠나고 싶어졌다.

지역에서 난 재료를 십분 활용해 훌륭한 별미를 만들어내는 전남 장흥으로 떠났다.

장흥군은 최근 이 지역에서 꼭 맛봐야 음식들을 장흥 9미(味)로 선정했다.

▲장흥한우삼합▲굴구이▲갯장어(하모) 샤부샤부▲갑오징어회·먹찜▲매생이탕▲바지락회 무침▲키조개요리▲된장 물회▲황칠백숙 등이 그것이다.

장흥 9미로 선정된 모든 음식이 그렇겠지만 이들 요리 중 상당수는 재료 자체의 맛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장흥한우삼합과 갯장어 샤부샤부, 된장 물회는 후텁지근한 여름철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고 떨어진 기력을 보하기에 그만이다.

◆한우와 키조개 관자, 표고가 만나니 '환상'이로구나
 

장흥삼합은 한우와 버섯, 키조개 관자 등 세 가지 재료에서 나오는 고유의 풍미가 한데 어우러지며 입맛을 돋우는 장흥 대표 별미다. [사진=기수정 기자]

대개 삼합이라 하면 암모니아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 묵은지를 한 입 거리로 싸서 먹는 음식을 떠올리겠지만 장흥의 삼합은 재료부터 다르다.

홍어 대신 키조개 관자를, 돼지고기 수육 대신 등급 좋은 한우를, 묵은지 대신 장흥 특산물 표고버섯을 함께 싸 먹는 색다른 삼합이다. 이 요리는 장흥군민이 합심해 만들었다고.
 

불판에 한우 한 점을 올리고 불판 가장자리에 가득 찬 육수에 탱글탱글한 키조개 관자와 표고버섯을 담가 살짝 익혀 싸 먹는다. [사진=기수정 기자]

한우와 키조개, 버섯을 함께 먹는 게 무엇이 별미냐고 하겠지만 일단 맛을 보는 순간 오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잘 달군 불판에 빛깔 좋은 한우 한 점을 올리고 불판 가장자리에 담겨 나오는 육수에 탱글탱글한 키조개 관자와 표고버섯을 담가 살짝 익힌다.
 

한우와 표고버섯, 키조개 관자의 조화가 일품인 장흥삼합[사진=기수정 기자]

고기가 익어가기 시작하면 뒤집은 후 뒷면만 살짝(오래 구우면 육즙이 다 새어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다.) 익힌다. 마찬가지로 살짝 익힌 관자와 데친 표고버섯을 한입 크기로 싼다.

보통 깻잎이나 상추에 싸먹기도 하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처음 한 입은 위 세 가지 재료만 맛보길 추천한다.

세 가지 재료에서 나오는 고유의 풍미가 한데 어우러지며 입맛을 돋운다. 한우를 씹을 때마다 나오는 육즙이 바다 내음이 진한 키조개 관자를 부드럽게 감싸 중화시키고 표고의 은은한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지며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씹고 나니 어느새 꿀꺽이다.

◆갯장어 샤부샤부 한 점이면 원기충전 '끝'
 

여름철 보양식 갯장어(하모)샤부샤부 한 상 차림[사진=기수정 기자]

장흥 9미 중 갯장어 샤부샤부도 빠질 수 없는 여름철 보양식이다.

여름철에 맛볼 수 있고 장어 중 최고가를 자랑한다는 갯장어는 요즘 ㎏당 5만원선에 육박한단다. 식당에서 하모샤부샤부 한 접시를 먹으려면 최소 8만~10만원은 내야 한다.

지역에서는 흔히 하모(はも)로 불린다. 아무것이나 잘 문다고 ‘물다’라는 뜻의 일본어 ‘하무’에서 유래된 갯장어는 주로 남해안 일대 갯벌에서 서식하는데, 단백질과 무기질, 비타민A가 풍부해 최고의 보양식 재료로 꼽힌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갯장어는 여름철 대표 보양요리 중 하나다.[사진=기수정 기자]

뱀장어나 붕장어에 비해 가시가 많아 조심스럽게 한 점씩 먹어야 하지만 맛은 최고다.

오동통 살이 오른 갯장어를 칼집을 낸 후 가시를 부드럽게 만들고 한입 크기로 잘라 대추와 인삼, 파 등을 넣은 육수, 전복과 버섯 등 부재료와 함께 상에 낸다.

육수가 끓기 시작할 때 손질한 갯장어를 살짝 데친 후 건져내 양파와 부추, 된장 등과 한 쌈 사서 베어 물면 담백하고 고소하기 그지없다. 너무 익히면 육질이 질겨진다. 살짝 데친 후 건져냈을 때가 가장 맛있다.
 

육수에 살짝 데친 갯장어를 양파, 부추, 쌈장 등과 함께 싸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사진=기수정 기자]


갯장어를 샤부샤부의 진한 육수를 한 숟가락 떠서 함께 맛보면 담백한 맛은 배가 된다.

샤부샤부를 맛본 후에는 죽이나 면으로 식사를 마무리하면 온종일 속이 든든하다.

◆된장 물회 후루룩 한 사발 들이키면 더위 싹~

초고추장을 풀어 먹는 물회와 달리 장흥의 물회는 된장을 기본으로 한다.
 

된장 물회. 커다란 옹기에 각종 야채, 생선(또는 한우)를 썰어 넣고 열무김치와 된장, 매실 진액 등을 넣고 버무려낸다. [사진=기수정 기자]

넓적하고 둥근 옹기에 된장, 새콤하게 익은 열무김치, 양파와 풋고추, 마늘을 올리고 매실과 막걸리 식초로 버무려 낸다.

여기에 꽁꽁 언 얼음 동동 띄워 내니 국물 한 숟가락만 입에 떠 넣어도 더운 속을 달래는 데 제격이다.

며칠씩 고기잡이를 나간 어부들이 준비해간 김치가 시어 버리자 잡아 올린 생선과 된장을 섞어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된장 물회는 이제 여름철 집 나간 입맛을 돌아오게 하는 별미가 됐다.

새콤한 맛보다는 된장의 구수함이 입안에 먼저 퍼지고 뒷맛이 깔끔해 남녀노소 즐겨 찾는다.
 

된장과 상큼한 열무김치가 한 데 어우러진 된장 물회의 식감은 아삭하면서도 쫄깃하고 그 맛은 고소하다.[사진=기수정 기자]


된장과 상큼한 열무김치가 한데 어우러져 식감은 아삭하면서도 쫄깃하고 그 맛은 고소하다.

물회를 다 먹은 후 남은 국물에 면이나 밥을 말아 먹어도 꿀맛이다.

최근에는 회 대신 한우를 넣은 한우 된장 물회도 판매한단다. 이 역시 여름철 입맛 제대로 사로잡는 이색 요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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