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말 과거 몽골유목민들에게 아내를 빌려주는 관습이 있었던가?
몽골 취재 당시 통역을 맡았던 당시 몽골 외국어대 여교수, 에르덴 수렝'에게 그런 풍습이 있었느냐고 물어 본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 교수는 금방 안색이 달라지면서 화를 냈다.
몽골인들을 어떻게 보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그 책을 쓴 사람에게 비난을 쏟아 부었다.
그러면 과연 과거 몽골 유목민들에게 그런 관습이 있었든가? 없었든가?
몽골 유목민들이 살아온 관습에서 유추해보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아내를 구해오는 족외혼은 유목민들에게 일반화돼 있는 혼인 형태였다.
형사취수(兄死娶嫂), 즉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한다는 수혼제도 과거 유목민들의 관습이었다.
외지 여인과 결혼을 하고 외지여인이었던 형수나 아버지의 첩을 취했던 것은 가까운 인척과 혼인을 피하려는 유목민들의 노력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떨어져 사는 유목민들이 외지 사람이 나타났을 때 아내를 씨받이로 내 놓았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 영화에 등장한 대처(貸妻)제도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은 우리나라에도 상영된 적이 있는 바렌(Barren)이라는 영화에 등장해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는 'The Savage Innocent', 굳이 해석하자면 '죄 없는 야만' 정도가 되겠지만 한국에서는 '버려진 땅', '미개지'의 의미로 바렌이라는 제목을 달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1960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에스키모인 이누크족들의 순박한 삶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 속에 아내를 빌려주는 대처제도(貸妻制度)가 나온다.
어느 날 에스키모들이 사는 동네에 백인 선교사가 찾아온다.
에스키모인 역을 맡은 안소니 퀸(Anthony Quinn)은 낯선 손님을 맞아 극진히 대접한다.
그들의 관습대로 날 생선과 귀한 음식인 구더기를 대접하지만 선교사는 질겁해서 손사래를 친다.
그러자 안소니 퀸은 밤에 자신의 아내를 선교사의 잠자리에 들여보낸다.
외지 귀한 손님에게 자기아내와 동침토록 하는 것이 에스키모 이누크족의 관습이었다. 선교사는 깜짝 놀라 거절한다.
안소니 퀸은 자기의 성의가 무시당했다며 심한 모욕감을 느끼며 분노한다.
그래서 선교사의 멱살을 잡고 얼음 벽 이글루에다 몇 차례 머리를 부딪쳐 죽여 버린다.
원래 에스키모인들은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면 살인을 해도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바깥세상에서는 살인죄가 큰 죄여서 이 문제를 놓고 에스키모인과 경찰이 옥신각신하면서 서로를 답답해하는 문화적 충돌이 일어난다.
결국 경찰에 붙잡힌 안소니 퀸은 송환되는 과정에서 위험에 빠진 경찰관의 목숨을 구해주게 된다.
두 사람의 경찰 가운데 한 사람이 '아라비아 로렌스'에 출연했던 피터 오툴(Peter O'Toole)이다.
결국 경찰을 그를 놓아주게 된다.
이누크족은 몽골고원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베링 해 쪽으로 옮겨간 몽골로이드(Mongoloid)다.
그런 점에서 과거 몽골 유목민 사이에 있었던 풍습이 이어진 것 아니겠느냐고 추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마르코 폴로의 하미 이야기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 대한 얘기는 마르코폴로의 세계의 묘사(Description of World), 우리에게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책속에 들어 있다.
마르코 폴로가 그의 책 117장에서 '가인두'라는 이름으로 언급한 곳은 바로 지금 중국 신강지역의 하미(哈密) 인근지역을 말한다.
천산산맥 동남쪽 기슭의 오아시스 도시인 하미는 지금 몽골 남쪽 국경선 아래쪽에 있지만 과거 몽골 땅이었던 곳이다.
마르코 폴로는 돈황(燉煌)과 하미를 거쳐 당시 쿠빌라이 칸이 있는 돌룬노르의 상도로 간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가 언급한 내용은 이렇다.
"외지 손님이 찾아오면, 남자는 아내에게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든 다 들어주라고 말하고는 밭이나 과수원으로 가서 나그네가 자기 집에 머물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나그네가 머무는 사흘 혹은 나흘 동안에 여자와 동침하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나그네가 자기가 집에 있다는 표시로 모자나 다른 표식을 문기둥에 걸어두면 집주인 남자는 절대로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
마르코 폴로는 그 지방이 아내를 빌려줌으로써 신과 우상이 자기들에게 혜택을 준다고 믿었다고 적고 있다.
또 손님의 대부분이 대 상단이었기 때문에 세속적인 물건을 가져다주기도 해서 수치를 느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언급은 어떻게 보면 매춘으로도 볼 수도 있다.
지금도 초원지대에 카자흐인들이 목축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하미에 그런 풍습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다만 마르코 폴로의 기록 자체를 완전히 믿기는 어렵다.
우선 마르코 폴로가 과연 대원제국에 갔던가 하는 것 자체가 논란거리다.
게다가 그의 책 내용은 과장과 허풍이 많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르코 폴로는 툭하면 백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과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오죽하면 그의 책을 '백만(百萬)의 서(書)'라고 부르기도 했을까?
몽골의 네 번째 대칸 뭉케는 하미 지역에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칸령(令)으로 이를 금지 시켰다는 애기도 마르코폴로 책에 기록돼 있다.
여러 상황을 추측해 보면 과거 유목민들에게 그런 풍습이 있었을 개연성은 있다.
그래도 이와 관련된 얘기를 지금 몽골인들에게 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큰 실례가 될 수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