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디터 이수완] 신대륙을 찾아 나선 콜럼버스 탐험대는 1498년 세번째 항해 중에 남아메리카 북부 카리브해 해안을 발견했다. 정복자들은 토착 인디언들의 수상 가옥들이 늘어선 그림같은 풍경이 '베네치아'(베니스)를 연상시킨다며 이곳을 '작은 베네치아'란 의미의 '베네수엘라'라고 불렀다.
이후 300여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베네수엘라. 스페인의 가혹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남미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시몬 볼리바르(1783~1830) 장군이 있었다. 베네수엘라 뿐 아니라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도 해방시킨 그는 남미 여러국가에서 불세출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볼리바르는 남미 국가들이 강대국에 속박되지 않으려면 미 합중국처럼 통합국가를 이룩해야 한다는 구상을 펼쳤지만 미국의 분열정책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는 볼리바르의 고향이다. 어디에 가도 그의 동상과 기념물이 널려 있다. 국제공항과 공립대학교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고 심지어 화폐 단위도 '볼리바르'이다. 우리에게 좌파 '포퓰리스트'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은 1999년 집권하자마자 나라 이름까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그의 정치적 우상이던 '볼리바르'를 국명에 추가한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보다 원유 매장량이 더 많다고 주장하는 베네수엘라. 고유가 당시에는 넘치는 오일 달러로 차베스의 과감한 포퓰리즘 정책은 21세기 사회주의의 새 모델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유가가 급락하자 재정 고갈로 인해 무상 복지는커녕 식량 수입도 제대로 못할 정도가 되면서 난관에 봉착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차베스는 쿠바 등 중남미의 반미(反美) 국가들과 연대를 모색하고자 석유를 무상으로 공급하기까지 했다.
생전 차베스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자신의 존재감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2013년 3월 암으로 사망한 후 위기는 한꺼번에 파도처럼 몰려왔다. 현재 국가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다. 거의 1000%까지 치솟은 인플레이션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볼리바르' 화폐는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생필품 부족으로 폭동과 약탈이 연일 발생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의약품 부족으로 10명의 산모 중 7명꼴로 시망한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이다.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은 차베스의 포퓰리즘 정책을 그대로 유지했다. 버스 운전기사 출신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차베스의 '유산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최근 그의 정부를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라고 표현했다.
차베스와 마찬가지로 마두로는 석유자원을 자기 마음대로 펑펑 쓰고 있다. 대부분의 자금과 공공부문 일자리를 자신의 지지세력에게 배분하며 정권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친정부 성향의 제헌의회를 강제로 출범시키고 야당이 주도하던 기존 의회의 모든 권한을 박탈하면서 반발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야권도 분열되어 마두로 정권의 확고한 대안세력은 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안정을 위한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마두로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고 일련의 경제제재를 통해 압박하고 있다. 국영 석유기업 PDVSA는 미국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 마련이 차단됐고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 중단 제재도 검토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베네수엘라가 "난장판"이라며 군사개입도 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자 베네수엘라는 물론 마두로 정권을 반대하는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콜롬비아, 칠레조차 반발했다. 이러한 반응은 과거 미국의 군사개입이 대부분 독재정권 탄생과 내전 등의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던 아픈 기억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때 남미의 제1위 부자국가였으나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부족한 식량에 허덕이는 국가로 변해버린 베네수엘라. 차베스가 '볼리바르 혁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베네수엘라식의 사회주의 꿈은 이미 물거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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