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권혁중)은 기아차 노조 소속 2만74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1조920억원대 규모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맞다"며 우너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노조 측 청구 금액 1조926억원 중 원금 3126억원과 지연이자 1097억원 등 총 4223억원만 인정했다.
앞서 기아차 노조는 지난 2011년 정기상여금과 일비, 중식대 등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냈다. 노조 측은 이를 포함한 임금으로 지난 3년간의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연차휴가수당 등을 계산해 미지급분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정기상여금과 중식대는 통상임금으로 인정했지만, 일비는 제외했다. 재판부는 "일비는 영업활동 수행이라는 추가적 조건이 필요해 임금으로 고정성이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통상임금에 해당하려면 명절이나 연말처럼 매년 비슷한 시기에 지급되는 '정기성', 모든 직원에게 지급되는 '일률성', 업적·근무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지급되는 '고정성' 등의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재판부는 "원고(노조측)은 근로기준법으로 인정된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연장·야간·휴일 근로로 생산한 부분의 이득은 이미 피고(사측)가 누렸다"며 "원고의 청구가 정의와 형평 관념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기아차는 감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기아차는 이날 선고 직후 공식입장을 통해 "청구금액 대비 부담액이 감액되긴 했지만 현 경영상황은 판결 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신의칙이 인정되지 않은 점은 매우 유감이며, 회사 경영상황에 대한 판단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즉시 항소해 법리적 판단을 다시 구하겠다"고 밝혔다.
기아차는 판결 결과에 따라 실제 부담 잠정금액인 1조원을 즉시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기아차의 영업이익이 지난 상반기 7868억원, 2분기 4040억원인 현실을 감안할 때, 3분기 기아차의 영업이익 적자전환은 불가피하다.
더욱이 지난 상반기 기아차 영업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44% 급락했으며, 영업이익률도 3%로 하락한 상황이다. 이는 2010년 이후 최저실적이며, 중국 사드 여파 등으로 인한 판매급감 등에 더해 충당금 적립으로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변 기아차 노조는 법원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자 환영의 뜻을 밝혔다. 기아차노조는 이날 법원 판결 직후 “노동자 입장에서 법원이 긍정적으로 판단해줬다”며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에서 항소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에 맞춰 법적 대응 등을 준비하겠다”며 “구체적인 입장 발표나 향후 대응방안은 내부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재계는 이번 선고 결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선고 결과에 따른 파장이 자동차 업계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2013년 3월 내놓은 '통상임금 산정 범위 확대 시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기업이 부담할 추가 비용 규모는 최대 38조550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나 한국 자동차산업은 생산·내수·수출 침체에 인건비 부담까지 떠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한우 기아차 사장은 앞서 "산업 특성상 야근, 잔업이 많은데 통상임금이 확대되면 수당이 50% 늘어날 것"이라며 "기아차가 50% 오르면 현대차(노조)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더 큰 노동시장 분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통상임금 판결의 영향으로 완성차와 부품사에서만 2만3000명이 넘는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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